“자, 다음 수업부터는 조별로 진행할 겁니다!” 교수님은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수업을 끝내셨다. 그날 저녁 과제를 위해 조원들과 카페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조원들 중에는 ▲핸드폰만 보는 사람 ▲친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는 사람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 등, 조별과제에 관심 있는 조원들은 없다. 결국 과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번 과제도 혼자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본교의 수많은 강의에서 전공을 막론하고 조별과제가 이뤄진다. 하지만 조원끼리 화합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든 사례는 극히 드물다. 조별과제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별과제의 효과

수업 및 과제의 한 방식으로 ‘조’를 짜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별과제는 교육학 이론에 따르면 소집단 수업의 일환이다. 소집단 수업에서 교사는 수업을 통해 문제를 제시한 후 소집단을 구성한다. 각 소집단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과 해답을 찾는 토론을 전개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전체 토론을 통해 각 소집단이 도출해온 결론을 비교·검토하는 단계를 거쳐 최선의 결론을 찾는 것이 소집단 수업의 과정이다.

소집단 수업의 운영 방법에는 ▲모든 학생이 동일한 과제를 부여받고 각 조에서 각자 개별적으로 학습하는 방식 ▲조원들이 서로 다른 과제를 부여 받은 후 학습하고 나중에 그 과정과 결과를 서로 합쳐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방식 ▲조원들이 처음부터 하나의 과제를 부여받아 모든 과정에서 함께 참여하고 결과물도 함께 만들어내는 방식 등 총 3가지가 있다. 여기서 일반적인 소집단 수업은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소집단 협력학습을 의미한다.

소집단 수업의 장점 및 효과로 ▲학생·수업·과제의 특성에 따라 융통성 있는 계획이 가능하다는 점 ▲조원 개개인의 역할이 중시돼 책임감 형성이 이뤄진다는 점 ▲조의 숫자가 적어 학습 및 평가가 용이하다는 점 등 많은 효과들을 기대할 수 있다.

?나만 하는? 조별과제

그럼에도 학생들은 왜 조별과제를 기피할까? 전술한 사례와 같이 소수의 학생에게 과제가 몰리는 현상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조별과제를 향한 각 조원들의 목적과 이해관계가 다른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리인 이론’을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리인 이론은 주인(principal)과 대리인(agent)의 관계를 분석하는 이론이다. 대리인은 주인의 이익과 관련된 행위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주인은 자신이 맡긴 일을 대리인이 잘 수행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과 대리인의 목적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즉, 주인의 이해에 반하는, 대리인 본인이 추구하는 행위도 있을 것이다.

결국 주인과 대리인 간 발생하는 목적 불일치와 정보 부족은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리인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인이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해 주인의 요구를 제쳐두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시작할 수 있으며, 반대로 주인은 대리인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감시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을 대리인 비용이라 한다.

이를 조별과제에 적용하여 자신을 주인, 조원을 대리인으로 간주해보자. 대리인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과 조원의 목적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별과제에서 목적은 학점이나 결과물의 방향성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이의 경우에는 조별과제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목적일 수도 있다. 또 모임이 끝난 이후부터 본인과 조원은 서로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서로가 맡은 일을 어디선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이때부터 대리인 이론에서 지적하는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몇몇 조원은 목표 불일치와 정보 부족을 악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과제만 수행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본인의 역량에 맞지 않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과제를 많이 수행하기 힘들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다른 조원은 이를 감시할 방법이 없으므로, 남겨진 과제들은 결국 과제 수행이 가장 절실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이런 과정으로 과제가 소수에게 몰리는 문제가 나타난다. 과제를 수행하는 당사자가 다른 조원들이 어떻게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면 대리인 비용이 증가하고, 그만큼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된다. 서원준(공대 기계 16) 씨는 “A 학점 이상의 성적을 받고 싶어도 다른 조원들의 성적 목표가 B 학점 정도라면 조원들끼리 과제 분배에 차이가 난다”며 “필연적으로 A 학점 이상의 성적을 받고 싶은 학생이 과제를 더 많이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무임승차를 부르는 조별과제의 구조

만약 대리인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각자의 목적들이 거의 일치한다면 조별과제는 성공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장 일반적인 조별과제의 목적으로 볼 수 있는 ‘성적’에 모든 조원이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조별과제 성적은 각 조마다 다르게 지급되지만, 조 내부에서는 (조원 간 성적 차등 분배가 거의 없으므로) 성적은 동일하게 주어진다. 조 내부에서 성적이 차등 부여되더라도 조원 모두에게 부여되는 조별 점수가 있기 때문에 과제에 기여하지 않아도 일정 성적은 받을 수 있다. 조직 이론에서는 전자의 성질을 ‘비경합성’, 후자의 성질을 ‘비배제성’이라 부른다. 또한 두 성질을 갖고 있는 재화를 ‘공공재’라 일컫는다. 즉 조별과제 성적은 공공재로 분류된다.

대규모 조직에서 개개인의 구성원들이 이득을 보려면 구성원들의 기여도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구성원들의 기여도는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공공재의 비배제성이라는 특성상 기여를 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게 기여해도 남들만큼의 혜택을 얻는 현상, 즉 ‘무임승차’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조별과제에 충분히 기여하는 조원도 기여량에 비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적다는 것을 인지하고, 과제가 요구하는 최적의 결과물만큼의 기여를 하지 않게 된다.

또 누군가 조별과제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여를 하면 다른 조원은 그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조 안에서 기여의 불균등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조별과제 평가 방식의 한계로 조별과제에서의 기여도와 받는 성적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만약 전체 평가를 개별평가 없이 조별평가로만 진행해서 조원 모두가 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기여도의 불균형에 따라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조 내부 개인평가는 교수의 재량이나 조원 서로의 평가(peer review) 등으로 결정되는데, 이 역시 본인과 타인의 기여도를 정확히 판단할 기준이 없어 100% 정확한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누군가는 다른 조원보다 더 많은 일을 분배받고도, 그가 항상 다른 조원보다 좋은 학점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미심쩍은 교육 효과

글의 서두로 돌아가 보자. 분명 조별과제에는 여러 방식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수많은 기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조적 문제에 부딪혀 의도와 맞지 않은 결과들이 형성됐다. 따라서 서두에서 언급한 교육적 효과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 곱씹어봐야 한다.

본래 조별과제는 학생?수업?과제의 특성에 따라 융통성 있게 계획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조별과제는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나 사고가 다수 조원에 의해 발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먼저 조를 편성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무작위다. 또 교수자는 1명인데 비해 대강의일 경우,  100명 이상의 수강생으로 편성되기도 한다. 10여 개의 조를 한 교수자가 담당하면 사실상 조별 특성화 교육은 힘들어진다. 결국 학생과 조에 구애받지 않은 채 획일화된 강의계획서를 토대로 조별과제를 진행하게 된다. 이는 소집단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학생의 특성별 교육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조원 개개인의 역할이 중시돼 개인의 책임감이 증대된다는 장점도 살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전술했듯 실제 책임감 및 기여도는 조원마다 제각각이다. 오히려 조별과제는 개인과제에 비해 개개인의 책임감이 분산돼 무임승차가 일어나기 쉽다. 개인의 책임감이 증대돼도 그만큼의 성적을 받기 힘들다.

개인에 비해 조의 숫자가 적어 학습 및 평가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언제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조별 평가가 개인 평가에 비해 쉽고 빠른 평가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나, 이로 인해 조원 개개인의 특성이나 과제 기여도를 놓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일이 학생들을 평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개인평가까지 조별과제를 통해 쉽게 해결하려는 몇몇 교사들의 악용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백새연(인문대 국어국문 17) 씨는 “조별과제를 활용하지 않아도 되는 과제까지 조별로 진행하는 것은 학생들의 역량 낭비”라며 “평가의 공정성과 실용성에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활용하거나, 바꾸거나

이상적인 조별과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조건 하에서 가능할 것이다. 수강생 10~15명 정도의 수업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3명 내외의 소집단들을 구성한다. 서로의 정보 불균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가 만났을 때만 과제를 진행하는 등의 수업진행 방식이 필요하며, 각 조원끼리는 과제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이뤄져야 한다. 교사는 각 조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수업방식을 설정해야 한다. 조원들 사이에도 어느 정도 감시와 제재가 가능하도록 권한을 부여해 무임승차를 방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현실에 도입하기란 매우 어렵다. 수업 준비, 조원들의 목표 불일치 등 변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위와 같은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조별과제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조직의 규모가 작다면, 무임승차나 기여 불균형 등의 문제를 현실에서 크게 보완할 수 있다. 무임승차가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한 적절한 제재 권한만 주어진다면, 협력적 해법이 가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조별과제는 가능한 적은 인원으로 편성할 때 공평하고 효율적인 과정을 기대할 수 있다.

완벽한 수업방식은 없다. 소규모 과제 등 조별과제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수업에는 다른 방식의 과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프로젝트형 과제 등 필연적으로 조별과제 방식을 택해야 한다면, 교사와 조원 모두 조별과제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조별과제의 인식을 개선시키려면 학교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조별과제는

기여도와 결과의 불균등으로

누군가는 손해보는 구조의

악순환"

참고자료

이의경, 『이기적인 대리인들』, 명경사, 2011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한국문화사, 2013

김선, 「소집단 수업방법 이해하고 적용하기」,

Korean Journal of Medical Education,

Vol.26 No.2, 2014

유동현 기자/ydh17@knu.ac.kr

편집 이연주 기자/lyj17@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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