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대학의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관심 범위에서 다소 밀려나게 됐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은 연장 투표를 해서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며, 단 한 팀의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만이 등록하거나 아예 아무도 등록하지 않는 상황이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학생 사회가 풍화되는 징후라 판단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본교 2019학년도 총학생회 선거에 두 선본이 후보 등록을 했다. 지난 2015년 3월 제47대 총학생회 보궐선거에서 세 팀의 선본이 출마한 후로, 햇수로는 4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경선 구조다.

‘대학생의 숙명’이었던 민주화 운동이 차츰 막을 내린 후로, 학생회는 더 이상 거창한 문제만을 다루는 조직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목표가 덜 거창해졌다고 해서 학생들과 더 가까워진 것도 아니었다. 학생들은 더욱 만연해진 개인주의 아래에서 대학 생활을 한다. 이제 학생들에게 학생회란 ‘나와 큰 상관없는 집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야식마차나 대동제, 단과대학 축제 등 행사를 진행할 때에만 몇 번 기웃거리며 스치듯 보고 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취업이 지상 목표가 된 현실에서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대학생이라는 이름 하에 공동의 목표로 삼았던 민주화의 바람은 이미 지나갔고, 빨리 졸업해서 취업에 성공해야만 하는 현재의 대학생에게 학생회에 대한 관심은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학생회가 학생 개인의 삶과는 동떨어졌다는 인식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회의 부재는 학생 개인의 삶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본교 2차 BTL 기숙사 수용인원 결정과정에서도,  대학 평의원회를 둘러싸고 학생의원 비율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에도, 본교 내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학생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에도, 학생회의 빈 자리는 여실하게 드러났다.

대학의 구조와 의미는 앞으로도 점점 바뀌어 나갈 것이다. 학생회 역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학생회가 반드시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학은 수업만 들으면 끝인 학원이 아니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혜택을 주장하고, 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어떤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할 대표자들이 있어야 한다.

오는 20일부터 3일 동안 전자투표를 통한 학생 대표자 선거가 진행된다. 여전히 학생회라는 존재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거나, 학생회의 활동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학생 개인의 삶을 위해서, 미래의 학생 사회를 위해서, ‘유권자’인 학생들이 자신의 손에 쥐여진 한 표를 기꺼이 행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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