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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나를 만든 ‘순간의 즐거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압박을 부모님이 대신 느끼고 계실 무렵,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시선이 마주친 아이와 절친한 친구가 됐다. 나는 문과, 그 친구는 이과였지만 우리는 도서관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긴다는 공통점으로 하나가 됐다. 고등학교 2, 3학년의 기억은 그 친구와 서로 흥미를 가진 노래, 책, 드라마 등 각종 취미를 공유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 순간들은 항상 즐거웠고, 불과 3년 전이지만 친구와 만나는 날에는 그 시절의 즐거움을 회상하곤 한다.
나는 모든 수시원서를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사용했다. 반면 장래희망이 없다던 그 친구는, 결국 자신의 원서를 모두 부모님 손에 맡겼다. 그는 학업성적이 우수해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이 의대에 진학하래”라는 말을 남기고 재수에 돌입했다. 다행히 올해는 그도 의예과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지금도 주말이면 그를 따라 의대진학을 희망하는 동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부모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1년간 노력했던 그는, 이제는 자신의 시간을 동생이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사용하고 있다.
몇 년간 그를 지켜보면서 계속 궁금했다. 중국어 노래를 잘 부르고, 소설을 쓰거나 그림 그리면서 살고 싶은 그에게 왜 장래희망은 없을까. 지금 의대에 진학한 그가 여유롭게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그가 즐거운 순간들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언제일까. 타인의 꿈을 이루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재학 중, 책이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학업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심취했다. 그때마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 마음껏 놀아”라고 하시던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에 진학하자, “지금 학과 공부만 열심히 하면 취직한 다음에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신다. 어머니는 순간의 즐거움을 참지 못하면 미래의 내가 후회할 것이라고 하신다.
하고 싶은 것을 직접 선택하고 실천할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즐거운 경험들은 시기에 따라 새롭게 다가와 내면에 쌓여갔다. 같은 책이라도 중학교 책상에서 읽었을 때와 대학생이 되어 읽을 때의 감상은 달랐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하루를 더 살았고,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이틀을 더 살았을 것이다. 어제·오늘·내일의 나는 모두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여러 번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특정한 ‘그 순간’이 아니라면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친구는 내게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한 것에 만족해”라고 했다. 그가 만족했기에 나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강요하거나 그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나도 언젠가는 불성실했던 ‘어제의 나’에 대해 불만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부모님의 말씀을 한 귀로 흘리고 내 마음대로 지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의 즐거움들을 놓쳤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권은정 탐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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