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한 후배가 자기가 쓴 소설을 ‘검열해’ 달라며 글을 보내왔다. 가난한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누나의 모습을 남동생 시점으로 묘사한 소설이었다. “이런 것까지 봐줘야 해?” 농담처럼 물으니 “저는 남자라 잘 모르니까요”라며 겸연쩍게 웃던 후배에게 나는 쉽사리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여성주의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며 잘못된 여성 이미지를 소비하는 창작물과 창작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작(秀作)이란 평가를 받았던 일부 작품 또한 연달아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한국문단은 개혁의 열병을 앓고 있다.이런 재평가의 대상으로 SNS와 여성주의 문학 비평에서 많은 논란이 된 대표적인 소설 중에는 김훈 작가의 「언니의 폐경」이 있다. 여성 화자를 앞세워 생리에 관한 묘사를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 독자는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다. 생리는 뜨겁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리 좁은 공간인들 혼자서도 충분히 생리 패드를 찰 수 있다. 독자들이 「언니의 폐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불쾌함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저 한 남성작가가 상상력만으로 그려낸 소설 속 상황이 ‘생리’라고 하는 여성 일상에 인식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작가가 쓴 글이니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최근 논란을 빚은 작가가 또 있다. 바로 이외수이다. 단풍을 ‘화냥년’에 빗대며 아름다움을 묘사한 글은 독자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부푼 젖무덤’, ‘가녀리고 아름다운 나의 누이’, ‘나를 살리던 어머니의 젖줄’ 등의 과도한 여성성적 묘사들은 일종의 밈(memes)으로서 자리 잡아 왔다. 이러한 문학적 표현은 시대가 바뀌어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지 못해 독자로 하여금 되려 피로감을 준다.아울러 이런 날카로운 지적 밑바탕에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성문인들이 등단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을 상대로 벌인 추악한 행동들은 미투(Me Too) 운동과 흐름을 같이 하며,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로 세간에 밝혀졌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던 문학을 포기한 여성 작가 지망생들에 비해 남성 기성 문인에게 주어진 처벌은 너무도 미적지근했다. 미투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창작 활동을 유지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남성 중심의 권력이 자리 잡은 한국문단의 현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1980년대 박경리, 박완서 등 인기 있는 여류작가를 상대로 남성주의를 표방하며 수준 낮은 시비를 걸던 때와 현 사회는 달라진 것이 있을는지. 창작의 자유는 견고한 윤리 의식의 뒤를 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 의식조차 희박해 보이는 문학계에서 ‘모든 창작물은 자유’라고 못 박는 행동은 이에 뒤따르는 비평과 비난, 크게는 처벌까지 모두를 종식시키겠다는 것과 같다. 문학은 사람의 삶을 보다 가깝게 다가가 조명하는 예술이다. 특정 권력 앞에 왜곡되고 오해될 때, 문학의 의미는 결국 퇴색되고 말 것이다.  

이지나 (인문대 국어국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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