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이 질문을 받으면 사람마다 그 답이 참 다양할 것이다. 관심사가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제각각이니까. 내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서슴없이 답한다. “세종대왕”. 왜 세종대왕이냐고? 나는 다시 답한다. “대왕께 여쭙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훈민정음 만드실 때, 하늘 땅 사람(삼재)의 이치를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와 결합한 착상을 어떻게 하셨는지? 음성기관의 움직임을 본떠 글자꼴을 만든 방법은 어떻게 창안해 내셨는지? 모음을 발음할 때 혀가 움츠러들고, 입술이 오물어지는 모습을 어떻게 밝혀냈는지? 최만리 등 여러 신하들이 결사코 반대한 일을 기어이 해낸 목적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그런데 걱정스럽다. 21세기 현대 한국인으로 사는 내가 1440년대로 돌아가서 세종대왕을 만나면 우리말로 서로 대화할 수 있을까?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런 염려의 마음이 없잖아 있다. 세종의 지시로 편찬한 책 『석보상절』에 나온 대화문을 보면 이런 걱정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인은 다음 문장의 뜻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문장부호와 띄어쓰기는 필자가 함)그 지븨셔 차반 ??쏘리 워즈런?거늘, 수달이 호미?려 무로?, “주인이 므슴 차바? 손? ?녀 ??노닛가? 태자? 청??? 이받??려 ?노닛가? 대신? 청?야 이바도려 ?노닛가?” 호미 닐오?, “그리 아닝다.”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수달’과 ‘호미’이다. 붓다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 아들 혼례를 치르기 위해 사위국의 대신 수달이 마갈타국 왕사성의 대신인 호미의 집을 방문하여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이다. 위 대화문을 현대국어로 풀이하면,

그 집에서 음식 만드는 소리가 왁자하거늘, 수달이 호미에게 묻되, “주인이 무슨 음식을 손수 다니며 만드십니까? 태자를 청하여 대접하려 합니까? 대신을 청하여 대접하려 합니까?” 호미가 이르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차반’은 ‘음식’을 뜻하는데 요즘도 드물게 쓰인다. ‘??쏘리’는 대충 짐작하여 알 수 있다. 경상방언에는 ‘맹글다’(만들다)가 요즘도 쓰이기 때문이다. ‘워즈런?거늘’은 좀 어렵다. 뜻이 안 통해 딱 막히는 낱말이다. 수달이 묻는 말, “주인이…” 이하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동사 ‘이바도려’에 쓰인 ‘이받-’에서 또 멈칫하게 된다. 이 동사는 현대국어에서 ‘이바지하다’로 쓰이지만 그 뜻이 조금 달라졌다. 세종 때에는 잔치를 베풀어 음식으로 남을 대접하는 것을 ‘이받다’라고 했으나, 현대국어에서는 ‘기여하다’는 뜻이다. 요즘의 혼사 절차 중에 ‘이바지 음식’을 보내는 것이 있다. 이 ‘이바지’란 낱말에 15세기의 말뜻이 남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다듬어 이 대화를 자세히 들으면 대강의 뜻은 이해할 수 있다. 군복무를 위해 15세기 당시의 최전방인 함경도 경성에 간 나신걸이 충청도 회덕에 사는 아내 신창 맹씨에게 보낸 편지 나신걸언간이 전하고 있다. 1490년경에 쓴 이 편지에 남편이 아내에게 다음처럼 말했다.

“? 분?고 바? 여? 사 보내뇌. 지븨 가 몯 ?녀 가니 이런 민망? 이리 어? 이실고. 울오 가뇌. 어마님 아기 뫼?고 다 됴히 겨소. ?년 ??? 나오고져 ?뇌.”

아래아 글자(?) 때문에 요즘 글과 약간 달라 보이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그 뜻이 대강 파악된다. “또 분(粉=화장품)하고 바늘 여섯 개를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님 모시고 아기 데리고 다 좋이 계시오. (나는)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세종이 사셨던 15세기 사람들이 남긴 대화를 들어보니 뜻 모르는 낱말이 몇 개 있지만 대강의 의사소통은 될 듯하다. 조금 걱정되는 점이 있지만 의사소통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겠다. 꿈속에서라도 대왕을 뵙고 싶다. 또 묻고 싶다. ‘빛’은 어찌하여 햇살이 쫘악 퍼지면서 눈에 비쳐 들어오는 느낌이 나도록 글자를 만드셨는지? ‘방울’은 어찌하여 동글동글 매끈매끈한 감각이 느껴지도록 자모 글자들을 조합하셨는지? 낱말의 뜻과 이미지와 소리가 한 덩어리가 된 이 디자인을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현대 한국어의 바탕이 된 세종시대의 말, 중세한국어라 부르는 15세기의 우리말과 우리 글자(훈민정음)에 담긴 비밀 코드를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싶다.

백두현 교수(인문대 국어국문)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