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여러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1907년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선 국채보상운동과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선 2.28 민주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사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대구 10월 항쟁’이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미군정의 잘못된 식량정책와 친일 경찰의 폭압에 맞서 이틀 동안 민중봉기가 발생했다. 봉기는 그해 말까지 전국 73곳의 시군으로 퍼져나갔고, 전국에서 230만 명이 참여했을 만큼 3.1 운동 이후 가장 대대적인 운동이었다. 당시 미군정과 경찰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봉기는 진압됐다. 미군정은 관련자들을 ‘좌익’으로 몰아 처벌했으며, 관련자 대부분은 6.25 전쟁 직후 대량으로 학살당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좌익폭동’으로 폄훼돼 왔으며, 언급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철저히 묻혀왔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오랫동안 ‘빨갱이’로 몰려 고통받았고 희생자들의 추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외면당한 이 사건은 민주화 이후, 사학자들을 통해 작게나마 연구가 이뤄지며 드러났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친일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자, 불만을 가진 민간인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국가적인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구 10월 항쟁은 광복 이후의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에 저항하여 일어난 전국적인 민중봉기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한국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동안 ‘빨간 칠’을 당하며 침묵과 고통을 강요받아 왔다. 이제는 망각의 늪에 빠진 대구 10월 항쟁을 되살려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을 해줘야 한다. 그것만이 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을 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대구 10월 항쟁에 대한 특별법이 통과돼야만 한다.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등 우리 현대사에서 큰 아픔을 준 사건들은 대부분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전기(轉機)를 맞이했다. 대구 10월 항쟁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항쟁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려는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은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대구 10월 항쟁은 광복 이후의 모순에 저항한 항쟁이자 현대 민중봉기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가 기억해야만 대구 10월 항쟁은 비로소 부활할 수 있다. 역사의 본질은 곧 기억이기 때문이다.

김근성

(사회대 정치외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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