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발생한 이후에 자백한 피고인의 관심은 자신의 범죄사실을 다투는 데보다 ‘법관이 어떤 종류의 형벌을 어느 정도로 부과할 것인가’에 있다. 변호인도 범죄사실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법관의 양형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피고인이나 변호인뿐만이 아니다. 바로 피해자와 그 가족이다. 피해자 또는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경우에 따라서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는 자신의 증오와 분노가 법관의 형의 선고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형벌이 선고된 경우에는 심각한 심리적인 위축감과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다. 또한 법관이 선고하게 되는 형벌의 종류와 정도는 이러한 갈등의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이야기가 난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논쟁의 핵심은 “과연 국가 형벌권의 정당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형벌의 목적은 응보인가 예방인가?” 등과 같은 다양한 법철학적 논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양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최근 흉기를 가지고 PC방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가해자의 가족이 가해자의 심신미약의 주장을 하면서 더욱 촉발되고 있다. 국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먼 양형, 가해자의 심신상실(미약)의 주장 등에 대한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SNS등을 통해 표출되고 있으며, 국민청원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법감정에 합치하는 양형은 무엇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가장 완벽한 양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사상을 표현한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일 지도 모른다. 이는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는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고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을 속였다가 카우소스 산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끔직한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처럼 ‘응보가 형벌의 최고의 이념으로 이해되던 시대의 양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형벌사상에 있어서는 응보와 예방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이해되고 있으며, 법치국가적 형법은 책임주의에 기초한 책임과 형벌의 상응성을 요구하고 있다(책임주의 Schuldprinzip). 책임의 범위 내에서의 형벌이 부과돼야 하고, 그 책임을 넘는 형벌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책임이란 무엇인가? 책임은 적법행위로 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또는 주의의무를 벗어나서 불법의 길을 선택한 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의미하며, 그 비난은 행위자에게 사물을 변별하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책임능력)이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이에 따라  형법에서는 ‘책임능력이 없는 경우에는(심신상실) 책임이 배제되어 벌하지 않고(제10조 제1항), 미약한 경우(심신미약)에는 형벌을 감경한다(제10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능력은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하며, 법관은 행위 당시에 행위자가 책임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한다. 규범적 판단 주체로서의 법관은 법조문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를 토대로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또 그에 적합한 형벌을 부과하게 된다. 이러한 법관의 사실인정과 양형판단의 과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법관이 가지는 자유심증은 전적으로 자의적인 심증이 아니라, 경험칙과 논리칙에 근거한 합리적인 심증이어야 한다.

대법원은 2009년부터 법관의 자의적인 양형판단들을 억제하고, 보다 합리적인 형 선고를 위해 양형기준을 마련했으며 이를 시행하고 있다. 양형기준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양형을 실현해 국민의 사법신뢰를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양형기준은 국민의 법감정에 지나치게 벗어나는 형벌의 선고를 지양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형기준은 국민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법감정에 부합하는 양형 범위를 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여론에 부합하는 양형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즉, 국민의 감정에 부합하는 양형이 아니라 책임주의에 기초한 양형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실체적 정의와, 발견된 진실에 대해 정당한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는 절차적 정의가, 양형의 내용과 과정에서 합목적적으로 조화되기 위해서는 ①양형기준을 더욱 세분화하고 객관적으로 마련하고, ②국민참여재판과 같이 일반 시민이 양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확대하며, ③법관이 판결문에서 판결의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해 자유심증의 결과가 자의적이 아닌 합리적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권오걸 교수

(법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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