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과정 대학원생 시절 실험 중에 커터를 잘못 사용하다 손가락 마디를 다친 일이 있다. 동네 의원에서 급히 치료를 받았으나 신경이 손상됐는지 지금도 왼손 중지 둘째 마디 위쪽은 감각이 없다. 보상받지도 못하는 평생의 장애를 입은 것이다. 당시는 손가락이 절단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만용을 부렸는데, 생각할수록 부주의했던 것에 후회가 된다. 이 외에도 실험하다 다친 경우는 수도 없이 많은데, 이런 사례는 나뿐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우리 대학 내 실험실에서도 크고 작은 상해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 국립대에서 실험 중 폭발사고로 대학원생 실험자가 크게 화상을 입은 사건도 매스컴에 보도됐다. 이 사고는 시약과 폐기물을 안전수칙에 따라 처리하지 않아서 발생한 폭발로, 우리 실험실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유형이다.

대학 내 실험실에는 일반 산업체 실험실과 다른 몇 가지의 특성이 있다. 첫째, 작은 공간에 실험실이 밀집돼 있는 점이다. 우리 대학만 해도 대구캠퍼스를 비롯한 각 캠퍼스에 안전점검 대상인 1,019개 실험실이 있고, 여기에 통제 밖의 사설 연구실 시설도 상당수 존재한다. 대부분의 실험실 주변에 강의실이 위치해 있다 보니 사고시 위험 노출 확률이 매우 크다. 둘째로는 학부생 및 대학원생 연구종사자의 낮은 숙련도를 들 수 있다. 전체 연구종사자 중 학생 신분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전문성을 쌓기도 전에 졸업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셋째, 다양한 연구에 많은 종류 및 수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최근에는 보안이 요구되는 생물작용제를 취급하는 실험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런 특성들로 인해 대학 내 실험실에는 산업체 연구기관에 비해서 위험 노출 요소가 많으며, 사고시 주변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대학 내 실험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정한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약칭 연안법)’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여기에 건강 및 작업환경을 고려한, 보다 세밀한 법을 적용하고 있다. 대학 내 연구실 안전사고의 책임은 연안법 상 연구 주체의 장인 총장에게 있으나, 실제의 책임은 연구책임자가 감당해야 한다. 상해의 피해를 대부분 학생신분인 연구종사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2016년에 연구실안전관리센터를 설립해 연구실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연안법에 준해서 해마다 연구실의 안전점검과 후속 개선조치에 많은 재원과 노력을 쏟고 있다. 또한 지속적인 연구실 안전교육 실시로 안전의식 정착 구현에 힘쓰고 있다.

연구실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해당 연구 종사자의 안전교육 이수와 일상 및 정기점검으로부터 출발한다. 연구종사의 안전교육 이수는 의무사항임에도 그 이수율이 매우 낮은데, 이수하지 않을 경우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도 이수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매 학기 똑같은 교육을 반복해서 이수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으나, 반복 교육은 ‘안전 의식화’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실험실에 책상을 들여 사무실로 겸용한다거나 음식물을 섭취하고, 심지어 음식물을 시료나 시약 냉장고에 함께 보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모두 연안법상 엄격히 금지된 사항이다.

우리 학교 학생과 교원의 안전교육 이수율은 약 50% 전후다. 해마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으나 교육부 평가지표 기준인 80%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어, 안전교육 이수율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필자는 십여 년 전부터 실험과목에 대해 강의계획서에 안전교육 이수를 명시하고, 이에 소정의 배점을 부여해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특정기간 전까지 온라인 안전교육의 교육 이수 증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인데, 매번 이수증을 제출하지 않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실험과목뿐 아니라 안전이 조금이라도 관련된 기초과학 및 전공 분야에도 다양한 방법을 제도화해서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또 교원의 성과평가시 안전교육 이수 결과를 반영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청렴 교육 이수는 교원평가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가는 유사전공이나 과별로 진행되므로 안전교육이 불필요한 교원의 평가제도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수안전연구실 인증제를 수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경북대학교에서는 2개 연구실이 인증을 획득했고, 1개 연구소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에서도 인증연구실에 대한 유무형의 인센티브를 확대할 추세인데, 우리도 대학 차원의 지원을 통해 우수연구실 인증 참여를 유도해서 대학의 안전문화를 조성해야 하겠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구성원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예방해서 ‘안전’을 넘어선 연구실 ‘안심’ 문화를 조성하고, 나아가 ‘안전사고 제로화’를 실현하는 데에 대학 구성원이 다함께 노력하기를 희망한다.

김영주 교수

(공대 환경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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