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다그룹 조평규 집행 동사장(인문대 중어중문 79)은 본격적인 한·중수교 이전인 1987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개인사업을 시작한 개척자이자 30여 년간 업계에서 최고경영자로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이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는 등 배움을 통한 발전을 거듭하는 노력가이기도 하다.개인사업에서 시작해 중국에서 인정받는 최고경영자가 되기까지 그의 일생, 최근 국제시장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한·중관계 악화 등 복잡한 외교 상황 속에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가져야할 태도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학창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학업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어떠한 생각을 했었나?A. 어릴 때부터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지식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스스로 지식이 덜하다는 생각이 들면 본능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자 했다. 그런데 지식을 얻는 방법은 재물을 얻는 것과는 다르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연한 계기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식은 다르다. 온전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서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책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무협 소설에서부터 수학, 영어, 재무, 회계 관련 서적까지 두루두루 읽었다. 그 덕분에 검정고시도 바로 응시해 합격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철학과 역사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Q. 본교 중어중문학과에는 어떻게 입학하게 됐나?A. 고향인 통영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16살 때부터 부산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군 복무를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24살에 본교에 입학하게 됐다. 당시 대구에 친누님이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려운 생활을 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사실 중어중문학과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당시는 중국과의 수교도 이뤄지지 않았고 교역량도 얼마 되지 않던 시기였다. 그 때문에 중어중문은 활용도가 없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컸다. 그러나 나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국제 정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개척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본교 중어중문학과에 지원했고,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때부터 중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Q. 경영과 관련 없는 학부를 졸업한 후 경영에 뛰어들었다. 어떤 과정이 있었나?A. 사실 애초에 사업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대학 진학 당시부터 중국에서 경영을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졸업 직후에는 마땅한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돈의 흐름을 익히고자 은행에 취업했다. 은행에서 일할 때 사업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대출 업무를 보면서 기업을 분석하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경험들이 후에 경영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1983년도부터는 서강대학교에서 야간 경영대학원 과정을 배웠다. 전문적으로 경영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첫 직장이었던 영등포에서 서강대학교는 가까웠다. 주간에는 은행에서 근무를 하고 야간에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이후 은행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일을 했다. 직접 실무를 겪으면서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지식을 얻기도 했다. 6년 정도 생수회사를 경영할 때는 새벽 5시에 출근하며 주6일을 일했다. 이때 회사의 재무와 경영 관련 지식을 몸으로 익혔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다가 은행, 경영 실무로 얻은 지식이 쌓이다보니 나중에는 기본적인 서류만 읽어도 회사의 운영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Q. 한·중 양국 시장의 차이점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A. 한·중 시장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마켓 사이즈다. 한국은 마켓 사이즈가 작고 중국은 마켓 사이즈가 크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격차가 크지 않기에 단일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잘 팔리던 상품이 대구, 부산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베이징 수도권 ▲상하이 ▲광동성 ▲동부 삼성권 ▲서부 개발권 등 지역별 특색이 강하다. 이러한 특색은 시장에도 반영된다. 곧 중국은 각각의 지역마다 다른 시장으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과 인기 있는 품목이 다르다는 차이도 있다. 중국에서는 최근 핸드폰을 이용한 플랫폼 사업이 인기가 많다. 소비를 좋아하는 민족색에 맞게 결제 시스템이 한국보다 발달해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인류학적 특색에 따른 차이가 생긴다.

Q. 옌다 그룹에서 맡고 있는 직책은 어떤 것이며, 어떤 업무를 했는가?A. 현재 옌다 그룹에서 집행 동사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동사장은 한국 기업의 회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집행 동사장은 동사장의 업무를 일정 기간 동안 이임 받아 행사하는 직책이다. 한시적으로 회장의 직책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옌다 그룹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드 문제 등 한·중 관계가 정체돼 있는 상황이라 대외적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내부적 운영에 신경을 쓰고 있다.나는 옌다 그룹에서 11년 정도 일했다. 옌다 그룹은 많은 계열사를 가진 회사다. 내가 경영하는 업무는 병원, 실버타운 설립과 부동산 개발 관련 업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하북성에 ‘서울 타운’을 구축한 것이다. 하북성은 베이징 근교에 위치해 있고, 베이징과의 관계는 서울과 분당의 관계로 생각하면 된다. 서울 타운은 거주 가구가 5만 세대에 이르는 구역이며 조선족과 한국인 등이 거주하는 한국형 주거 단지다. 중국 내에 조선족과 한국인을 위한 마땅한 주거 구역이 없었는데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 신라시대 장보고가 산둥반도에 신라방을 건립한 이후 최초라고 들었다. 이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이 크다.

Q. 중국이 성장을 거듭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A.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의 중요성을 더 크게 실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체 교역의 3분의 1 이상이 중국과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으로 중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경제가 중국 경제에 많이 예속돼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중국은 계획경제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인 반면,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중국의 반응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현재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중국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선진 공업국들은 중국이 시장이란 생각으로 접근해야한다. 지난 몇 년간 중국인의 소득·소비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내 생산 제품 중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은 아직 없다. 그래서 고급 상품 시장은 외수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중국 내수 시장의 갈증을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중국은 좋은 특화시장이 될 것이다.

Q. 최근 우리나라의 사드배치와 관련해 한·중 무역의 침체가 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A. 그러한 생각에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일반 소비재, 관광, 화장품 등의 사업은 일부 영향을 받았으나 그 외의 사업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 중국 쪽에서 필요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무역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감성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고 이성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대를 내다보면 더 이상 우호 관계를 따져가며 무역이 이뤄지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철저히 국익을 우선시하며 중국에 대해 일사분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Q. 중국에 진출한다면 유망 업종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A. 고급 소비재 중심의 하이엔드(high end) 업종을 추천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용 ▲성형 ▲의료 ▲화장품 ▲커피 등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이러한 업종은 한국제가 좋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이러한 사업은 단기간에 따라 잡히는 사업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 수준이 발달함에 따라 하이엔드 업종에 대한 수요는 증대하고 있고 앞으로도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는 기존에도 성과가 좋은 ▲엔터테인먼트 ▲연예인 양성 사업 등이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Q. 오랜 기간 사업을 한 만큼 많은 실패를 겪었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는가?A. 처음 은행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완전히 망해버렸다. 주저앉고도 싶었다. 그러나 실패가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 후에도 적지 않은 실패를 겪었지만 지나고 보면 실패의 경험이 쌓여 성공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순탄하게만 진행되는 삶을 살다가 나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해보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겠는가? 실패를 통해 배우고,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다보면 실패를 하고 싶어도 실패하기 어려울 것이다.

Q. 본교 후배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A. 요즘 후배들을 보면 지나치게 위축돼 도전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지방 소재 대학으로서 핸디캡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공한 수많은 선배들의 사례를 보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정성을 쏟고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이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항상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붓글씨로 모교인 '경북대학교'의 한자를 적고 있는 조평규 집행 동사장. 능숙한 필체에서 오랜 중국 생활의 연륜이 느껴진다.

▲개인 집무실에서 집무 중인 조평규 집행 동사장. 책장에는 그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서적들로 가득하다.

장은철 기자/jec16@knu.ac.kr이광희 기자/lhk16@knu.ac.kr편집: 이연주 기자/lyj17@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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