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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토지공개념은 시장경제의 필수 장치


지난 3월 26일 국회에 발의됐던 청와대의 헌법 개정안에 토지의 공공성을 명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는 가운데 ‘토지공개념’이 주목받고 있다.‘토지정의운동’의 주창자인 본교 김윤상 행정학부 석좌교수의 설명을 통해 토지 사유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지대개혁을 통한 토지 공공성 확보의 필요성을 알아보자●

토지공개념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물자는 자연물 아니면 인공물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인공물이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만 자연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므로 당연히 자연물이 더 중요하다. 자연물 중에서도 토지는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하다. 그래서 토지의 소유, 분배, 사용에 관한 제도는 모든 사회제도의 기초가 된다. 토지제도가 실패하면 다른 제도는 사상누각이 되며, 토지의 사회경제적 비중이 큰 만큼 잘못된 토지제도의 파괴력도 크다.
그런데 중요한 제도일수록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제도 개혁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득권층은 그렇다 치더라도, 불이익을 받아온 사람들마저 문제 제기를 잘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기존 제도에 적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득권층에 의해 세뇌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이 기득권층이건 아니건 이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토지공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토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의 터전이고 그 면적과 위치를 바꿀 수도 없다. 또 토지 사용은 공간적 및 시간적으로 이웃 토지와 후세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토지는 다른 물자에 비해 공공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인식이 바로 토지공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토지공개념’이라는 용어가 토지투기 대책으로 등장했고, 지금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토지투기 억제를 위한 토지공개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파가 보더라도 토지사유제는 옳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보편화돼 있는 토지사유제는 자연물인 토지를 인공물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성격의 사유재산으로 취급한다. 그래도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토지사유제에 이의를 제기하면 대뜸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도 있지만, 결론부터 밝히자면 지금과 같은 토지사유제는 우파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옳지 않다.
평등한 자유는 결과의 균등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므로 분명히 우파의 가치다. 토지사유제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원조 우파 철학자로 로크(John Locke)가 자주 인용된다. 그는 “적어도 대등한 품질, 충분한 양의 무소유 토지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토지에 인공을 가한 자가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인용 부분이 유명한 ‘로크의 단서(Lockean proviso)’다. 이런 단서가 충족되면 한 사람이 토지를 소유해도 다른 사람의 토지 취득을 가로막지 않으므로 평등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경시대에도 인구에 비해 양질의 토지가 충분히 존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더구나 토지의 물리적 특징보다 사회·경제적 입지가 중요한 오늘날 로크의 단서를 적용하면 토지의 소유는 불가능하다. 평등한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가운데 토지사유제를 정당화하려면 로크의 단서를 다음과 같이 수정·보완할 수밖에 없다.
첫째, 모든 국민의 토지 소유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 너무 당연해서 설명이 필요 없다.
둘째, 단지 토지를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이익을 환수해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 양질의 토지가 무한히 존재하지 않는 한 누군가 토지를 차지하면 다른 사람이 같은 품질의 토지를 취득할 기회는 줄어든다. 그러므로 토지를 소유하는 사람은 특권을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차별을 당하는 결과가 된다.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짧은 주기로 토지를 새로 분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만, 건물이나 과수와 같이 단기간에 토지에서 분리하기 어려운 결과가 있다면 이 방법은 곤란하다. 그보다는 토지소유권에서 생기는 특권이익, 즉 지대를 환수하여 기회가 줄어든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상하거나 모든 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더 낫다.
셋째, 토지소유권의 행사는 토지사유제를 두는 취지에 의해 제약된다. 토지소유권은 ‘생산자가 생산물을 소유한다’는 자연법에 의해 당연히 발생하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특정한 필요에 의해 사회의 합의로 설정되는 상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토지사유제는 이런 조건을 무시한다. 특히 특권이익 환수라는 조건을 무시한다. 양도소득세나 재산세 등으로 일부 환수하기는 하지만 100%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러므로 양식 있는 우파가 지금과 같은 토지사유제를 지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지대개혁이 필요하다

위에 제시한 세 조건 중 오늘날 가장 심각하게 무시되고 있는 조건이 ‘특권이익 환수’ 조건이다. 토지 소유자가 아무런 생산적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발생하는 특권이익이 소유자에게 귀속된다면 불로소득이 된다. 토지 불로소득의 폐해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나 잘 보아왔다. 땅 가진 사람은 노력도 하지 않고 땅땅거리며 산다. 그래서 고위 공직자 청문회 때마다 후보들의 부동산 투기 전력이 드러나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토건족에 포획된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낭비적 공사에 쏟아붓는다. 불로소득을 노리는 개발·재개발이 서민의 삶터를 파괴한다. 땅 없고 집 없는 사람은 평생 벌어도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월세로, 전세로 불안하게 산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노동자는 생산성을 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다. 사회의 자금과 에너지가 토지 투기에 쏠리면서 경제에 큰 짐을 지운다. 그 정도가 심하면 2008년 이후의 미국발 경제위기에서처럼 경제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는다. 토지 국유를 견지하는 중국에서조차 특권이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않기 때문에 투기와 빈부격차 등 커다란 부작용을 겪고 있다.
토지의 특권이익은 경제학에서 지대라고 부른다. 불로소득의 폐해를 막으려면 지대를 징수하면 된다. 지대를 징수하는 세금을 ‘지대세’라고 부르자. 대부분의 세금은 경제에 짐이 되지만 지대세와 같은 토지보유세는 그렇지 않다는 게 모든 교과서가 인정하는 진리다. 따라서 지대세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다른 세금을 깎아주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난다. 지대세로 인해 토지 불로소득이 빚어내는 폐해가 예방되고, 나쁜 세금이 줄어 경제가 피어난다. 지대세를 최우선적인 정부 수입으로 삼는 세제를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라고 하는데 현재의 세제와 비교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지대조세제를 택하더라도, 지대세만으로 정부 세수를 모두 충당하지 못한다면 임금과 이자에도 추가로 과세하게 된다. 물론 추가 세액은 지금보다 매우 적은 금액이 된다. 지대조세제는 19세기 미국의 토지 사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에서 제시한 제도인데, 당시 미국에서는 지대세만 징수해도 정부 재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여 지대세를 토지 단일세(single tax)라고 부르기도 했다. 토지개혁이라고 하면 흔히 토지 자체를 균등하게 나누는 개혁을 연상하기 때문에, 오해를 피하고자 헨리 조지 방식을 ‘지대개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본주의에 어긋난다는 오해

지대조세제가 자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대조세제는 오히려 진정한 자본주의에 더 충실한 제도다.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인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에 비추어 평가해 보자.
첫째, 지대조세제는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제도다. 사유재산제는 개인의 노력과 기여의 대가를 그 개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세제라면 불로소득부터 우선 징수하고, 그것만으로는 정부 수입이 부족할 경우에 한하여 노력과 기여의 결과에 과세해야 한다. 더구나 여러 형태의 불로소득 중에서 토지 불로소득은 사회적 기여가 전혀 없고 오로지 폐해만 낳는 가장 악성의 불로소득이므로 최우선적 환수 대상이 돼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행 세제가 오히려 사유재산제에 어긋난다. 소득세는 노력과 기여에 의해 발생한 소득인지 그와 무관한 불로소득인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과세 대상으로 삼는다. 부가가치세도 생산적 노력에 의해 증가한 가치를 걷는 세금이다. 반면 지대조세제는 소유자의 노력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토지가치에 우선적으로 과세하므로 진정한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세제다. 다만, 토지사유제 사회에서 갑자기 지대세를 도입하면 지가가 폭락하기 때문에 보상 여부가 쟁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 문제는 아래에서 별도로 언급한다.
둘째, 지대조세제는 시장친화적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도 토지보유세를 ‘가장 덜 나쁜 세금(the least bad tax)‘이라 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교과서가 인정하듯 지대세와 같은 토지보유세는 시장 작용을 저해하지 않는 효율적인 세금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지대세가 완전경쟁 토지시장에서 이룩될 상황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완전경쟁 토지시장에서는 미래에 실현될 지대 소득이 모두 반영된 지가를 매개로 하여 토지가 매매되므로, 토지 매입자는 매입 시에 예상되는 미래의 모든 지대를 지불한다. 따라서 최초의 토지 소유자를 제외하고는 불로소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정보가 매우 불완전한 현실에서는 추후의 토지 소유자도 불로소득을 얻는 일이 많고, 그 때문에 투기가 일어나고 가수요가 발생한다. 그런데 지대세가 도입되면 토지 소유자가 불로소득을 얻을 수 없어 완전경쟁 토지시장에서 이루어질 수있는 상태가 현실에 나타나게 된다.


지대개혁의 연착륙은 ‘지대이자 차액세’로

이처럼 지대조세제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에 위배되기는커녕 오히려 필수적인 장치이지만, 이미 토지사유제가 정착된 상태에서 지대조세제를 도입할 때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지대세를 징수하면 매매가격인 지가는 이론상 0이 된다. 지가는 미래에 발생할 지대의 합인데 토지소유자는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납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완전한 지대조세제를 도입하면 지가가 폭락하여 경제에 혼란을 초래한다. 이런 혼란을 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율을 낮게 시작해서 조금씩 올려 나가는 점진적 방법이다. 다만, 이 방법은 세율이 상당히 오르기 전까지는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는 동안 부동산 투기에 대응하려면 부득이 강력한 양도소득세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매입지가에 대한 이자를 공제한 후 나머지 지대만을 징수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지가가 거의 매입지가로 고정되고, 토지소유자에게는 그 이자가 보장되므로 ‘재산권 침해’ 시비가 생길 수 없다. 또 땅을 사든 예금을 하든 소유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이자뿐이므로 실수요자가 아니면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 이런 세금을 ‘지대이자 차액세’ 또는 ‘이자공제형 지대세’라고 부르는데, 필자는 이 방식을 강추한다.
그러나 이 방식도 다른 세금을 대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아쉽다. 예를 들어 시행 초기에 지대와 이자가 같다고 할 때, 연간 지대상승률이 3%라면 50년 후에 지대의 77%를 징수하게 된다. 지대세 수입이 상당한 규모가 되기 전에는 소득세 등 시장 제약적 세금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시간을 단축하려면 일단 지대이자 차액세를 도입한 후 점차로 공제액을 줄여나가는 전략도 있다.

김윤상
(행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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