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부모님과의 사이에 비밀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나는 무뚝뚝한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사이의 1녀 1남 중 장녀로 자랐다. 흔한 자기소개서 첫 마디로 나올 법한 이 문장은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붙이자면, 나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무뚝뚝하다.

내가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 후, 그러니까 4세 이후부터 나는 부모님과 손 이외의 부위를 접촉한 적이 거의 없다. 포옹은 간지럼을 많이 타서 피했고 팔짱은 팔에 땀이 찬다고 피했다. 어버이날이나 부모님의 생신마다 장문의 편지는 써도 ‘사랑해요’ 한 마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싫어서라기보다 그냥 원래 그렇게 대하는 것인 줄 알았고,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기에는 부끄러워서 계속 무뚝뚝하게 대한다. 더군다나 부모님과 잦은 의견충돌이 있었기에 애정표현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동생이 어렸을 때 ?코알라?라고 불릴 정도로 애정표현을 잘해서 부모님께 필요한 ‘자녀의 애정표현’을 채워드리고 있다.

드문 애정표현과는 별개로 나는 부모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매일 어머니께 전화하고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께 전화한다. 누군가는 “그거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 살았기에 부모님께 연락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의도적인 행위라는 느낌이 든다. 대학에 온 후로 떨어져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모든 헤어졌던 가족이 그렇듯 만나면 애틋하고 다시 헤어지면 아쉬웠다. 덕분에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한 빈도는 높아졌고, 최근에는 부모님과 포옹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속마음을 많이 털어놓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쉽게 마음을 터놓고 말해준다. 그래서 나도 쉽게 그들에게 고민을 나누고, 기분 나빴던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부모님께 내 고민을 말하더라도 그 전에 친구들에게 먼저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해도 괜찮을까”하고 물어본다.

부모님은 분명히 나의 든든한 지지자다. 나 역시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 그러나 부모님께 나의 고민을 말하면 나의 고민이 그들에게 짐이 될까봐 무섭다. 항상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살아온 나에게 부모님은 하나의 세계이고 기준이다. 그들이 너무 소중하기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에, 오히려 솔직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부모님 앞에선 내가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고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는 털어 높아도 부모님께는 “나는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죠”라는 말을 달고 지낸다. 이는 아마도 내가 아직 그들의 짐을 들어드릴 수 있을 정도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너무 가까운 사이는 때로 멀고 어렵게 느껴진다.

권은정 탐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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