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1학년, 새로 산 빳빳한 교복을 입고 늦봄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던 그 즈음, 내 옆자리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전학을 온 짝꿍이 앉아있었다. 얼굴이 희고 곱상하게 생긴, 긴 갈색 머리칼을 이마가 드러나게 질끈 묶은 여자애였다. 사투리가 강한 말씨도 아니었고 아이들과도 쉽게 잘 어울렸기에 그 애에게서 딱히 낯선 점을 느끼지 못했다. 5월이 끝나가던 무렵의 어느 날 그 애가 불쑥 말했다. “아, 벌써 제사철이야. 광주 친가에 다녀와야 해.” 멀리 가기 싫어 투덜대는 말투였지만 그것보다도 ‘제사철’이라는 단어가 더 신경이 쓰였다. “제사에 철도 있어? 제사철이 뭐야?”하고 묻는 아이들에게 그 애는 당황스럽다는 얼굴을 하고선 되물었다. “5월, 6월은 원래 제사철 아니야?” 광주에서는 오뉴월에 제사 안 지내는 집이 잘 없다고, 그 얘길 들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작년에 배우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한창 흥했다. 처음 영화의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텅 빈 공간의 정 가운데에 연두색 택시 한 대가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머릿속 가득 물음표를 띄웠다. 이게 무슨 영화람, 웬 택시가 다 연두색이래. 그런 생각을 하며 밑에 달린 영화 시놉시스를 읽었다. ‘택시운전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1980년대 서울의 한 남성. 어느 날 그의 택시를 찾은 외국인 손님이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제안을 하고, 이를 받아들인 택시운전사는 손님의 제안에 따라 서울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운전하게 되는데….’ 거기까지 읽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영화의 주제는 타 지역에 살던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본 1980년 5월의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겐 아직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날의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고통을 겪은 사람의 가족이 아니어도 그날을 기억한다. 38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왜 그날의 기억은 퇴색되지 않는 걸까? 왜 그 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하는 걸까? 아마 그 5월,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도 지금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을 테니 그 아픔에 더욱 공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사람들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 넣고 등에 칼을 꽂아 넣은 범인들은 정작 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단다. 기억이 나더라도, 자기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발뺌을 해버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해서 “나는 그 시기 광주에 없었다”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올해도 광주의 오뉴월은 제사철일 것이다. 1980년 그날의 그 운전기사처럼 우연히 광주를 봤을 사람들, 책과 영화와 전해지는 말들로 그날 광주를 보게 되는 사람들, 이 모든 보통 사람들의 기억은 여기 이렇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광주의 살갗을 찢고 헤집은 범인들의 기억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기억 속에는 누가 피해자로 남아있단 말인가. 전 전 대통령의 집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금 중학교 시절 짝꿍을 떠올려본다.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여느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또다시 헤집는 동안, 그 애의 친가는 올해도 제사철을 맞아 제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조현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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