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걸려온 것은 늦은 새벽이었다. 전날의 숙취로 몇 번 구역질을 한 후에야 침대 위에 지친 몸을 누였던 애매하고도 늦은 새벽. 책상 위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은 계속해서 진동을 울리다, 곧 어디론가 떨어졌는지 낡은 바닥과 맞물려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것이 어쩐지 듣기 거북해 한참을 베개로 귀를 막고 있다가 잠시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임은, 잠결에 화장실을 들렀다가 물을 마시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잡아 든 후에야 믿을 수 없는 문장 하나를 보고 만 것이었다.

[이은재 본인상.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1호]

임은 떨리는 손을 뻗어 의자에 걸려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 낡은 신을 구겨 신고 집 앞 도로로 뛰쳐나와서는, 갈취하듯 택시를 잡아타고 나서야 힘이 빠진 다리가 검은 시트 위에서 후들거린다. 임은 마른 손으로 연거푸 얼굴을 쓸어내렸다.

화환들이 즐비한 장례식장 밖은 제 도리를 다했다는 냥 살아있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들로 북적였다. 혼탁한 음성들 사이를 거쳐 빈소 안으로 들어간 임은 좁은 방 한 켠에 놓여있는 낯익은 얼굴을 보곤 멈춰 섰다. 모든 걸 예상한 듯이 웃고 있는 얼굴. 까만 테의 신위 위로 잿빛의 향이 정처 없이 연기를 내뿜는다.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감은 이미 황망하게 먼 것이라, 임은 하얗게 핀 국화꽃을 선단 위에 놓은 후에야 힘없이 물러섰다. 바들거리는 손은 정처 없이 떨리고 몸을 채 낮추기도 전에 눈물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것이 바닥을 향해 낙하한다. 좁은 액자 속에 갇힌 처지가 못내 가여워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숨을 삼키자, 혀끝을 타고 비릿한 피가 스민다.

조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갈 즈음, 테이블에 모여 있던 동기들이 임을 불렀다. 느릿하게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자 덩그러니 놓여있던 빈 술잔에 소주가 따라졌다. 큰 인사는 없었다.

“은재. 왜 죽은 건지 아냐?”

혁이 물었다. 덤덤한 말투와는 달리 짙게 그늘진 눈매는 마치 사실을 말하면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겠단 기세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 날선 시선에 반응한 다른 수많은 의문들도 떼지어 자신을 향해있었다. 산란기를 앞둔 연어 떼마냥 한곳에 모여든 눈동자들이 퍽 우스워 임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무엇을 말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혁이 울먹였다. 

“은재 자살이란다. 야. 어떻게 우린 동기라면서.......”

임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앞에 놓인 술을 들이켰다. 언젠가 은재의 서류를 대신 제출하기 위해 학교를 갔던 날, 그녀가 자살소동을 벌여 휴학을 했다는 소문이 과 전체에 만연했던 적이 있다. 마주치던 사람마다 자신을 붙잡고 진위를 물어오던 해괴한 소문의 발원지가 누구였던가. 투명한 유리잔 너머로 조각난 혁의 얼굴이 비춰진다. 장소조차 분간 못한 채 날조된 정보를 진실마냥 내뱉어대고선 겉으로만 깊은 유감을 표하는 척하는 몰골이 유독 징그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임은 애초에 이런 분위기가 석연찮았다. 말만 동기였을 뿐 은재에게 관심을 가진 적도 없는 이들이 아니었던가. 곧 혁은 자신이 상주 노릇을 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척해 보이는 얼굴과 검게 자란 수염이 정말로 은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몇 번이고 거절하는 은재의 친척들을 상대로 막무가내로 완장을 받아낸 혁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려 남몰래 웃음을 삼키는 것을 임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내며 임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때로는 웃는 낯짝에 침을 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있는 법이라고.

박동주

(사범대 불어교육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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