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란 화폐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경제 용어다. 물가가 상승하는 것처럼 대학 졸업자의 평균 학점이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됐고, 이를 빗대어 ‘학점 인플레이션’이라 부르곤 한다. 교육부는 이러한 학점 인플레이션을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고 대학 평가 기준에 학점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노력을 포함시키는 등 학점 인플레이션의 해소를 권장하고 있다. 지난 2월 본교 학사처도 재이수 제도를 개선하는 등 학점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교 교수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학점 인플레이션의 발생 과정 및 현황과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알아봤다●

학점 인플레이션의 배경

대학 교육이 과거 엘리트 중심의 선별 교육에서 대중 중심의 보편 교육으로 전환되자 대학 졸업자(이하 대졸자)의 수도 증가했다. 대졸자의 시선에서 좋은 일자리는 한정된 반면, 희소성이 사라진 대졸자가 취업 시장에서 갖는 이점은 약화돼 취업경쟁이 과열됐다.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손쉽게 선별할 수 있는 지표로 학점을 활용했고, 학생은 고학점 획득을 통해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으며, 대학 역시 취업률 등 대학 평가 지표의 향상을 위해 학생 친화적인 학사제도를 선호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등장했다. 본교 김규원 교수(사회대 사회)는 “학점 인플레이션은 한국뿐 아니라 대학 교육이 대중화된 다수 국가에 걸친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한국이 1990년대 외환위기를 겪으며 취업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돼 학점 인플레이션의 문제가 더 강조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학점 인플레이션 현황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대학정보공시센터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도 2학기 기준, 전국 10개 거점국립대학 졸업생의 전공학점 분포는 다음과 같다. A학점 이상 비율은 충북대학교를 제외한 9개 학교가 30% 이상, B학점 이상 비율은 전북대학교, 충북대학교를 제외한 8개 학교가 70% 이상이다(아래 그래프 참조). 다수의 대학이 A학점 이상 비율을 최대 30%, B학점 이상 비율을 최대 70%까지로 정한 것을 고려하면 현재 졸업생의 전공학점은 인플레이션이 심한 편이다. 특히 본교는 지난 2016년 기준 졸업생 중 학점 백분위 90 이상 학생 비율에서 전국 211개 대학 중 26위인 48.3%를 기록하는 등 학점 인플레이션 정도가 전국의 대학들과 비교해봤을 때 높은 편이다. 본교 학사부처장 김유진 교수(사회대 사회복지)는 “지난 3년간 통계를 보면 본교 재학생의 수강 과목당 재이수 과목 비율은 14%에 달했다”며 “이는 다른 학교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이며 본교의 학점 인플레이션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학점 인플레이션의 문제점

앞서 언급했듯 학점 인플레이션은 ▲기업- 손쉬운 채용 ▲학생- 취업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대학- 평가 지표의 향상 등 모두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발생했다. 그러나 학점 인플레이션은 점차 해소해야 할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 높은 학점에 대한 기업의 요구와 학생의 열망, 그리고 이에 대한 대학의 방종의 결과로 대졸자들이 높은 학점을 부여받게 된 것이라면, 이렇게 부여된 높은 학점은 대학에서 얻게 되는 학점에 대한 타당성 및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원 교수는 “학점 인플레이션은 시장 정보를 왜곡해 공정한 채용 기회를 해칠 수 있다”며 “그동안 취업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학점이라는 지표가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졸업 이후의 취업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대학 내부에서도 학점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다. 고학년 학생이 더 높은 학점을 얻기 위해 이전에 수강했던 과목을 재이수하게 되면 이는 같은 수업을 듣는 저학년 학생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재이수하는 과목에 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학년 학생이 높은 학점을 획득하게 되고, 경쟁에서 밀린 저학년 학생들은 그 과목을 재이수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김유진 교수는 “본교에서 운영 중인 학생 옴부즈맨을 통한 설문조사 결과 재이수자와 초이수자의 동일한 성적평가 기준에 대한 불만 사항이 많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학점 인플레이션은 학생의 성취 수준에 관계없는 무분별한 ‘학점 퍼주기’의 결과로 오인되기 쉽다. 그 결과 학생의 학점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 절하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학생들의 학습 동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대학의 ‘성적 부풀리기 행태’를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대교협은 전국 대학에 ‘대학의 학생성적관리 개선방안 안내 및 협조 요청’ 문서를 송신해 성적 부풀리기를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교육부가 실시한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는 1단계 지표 60점 만점 중 4점을 ‘학생 평가’ 지표에,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는 1단계 지표 75점 만점 중 4점을 ‘학생평가의 적정성 및 운영 성과’에 배정하는 등 학점 인플레이션 완화 정도를 대학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의 입장은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김정훈 사무관은 “교육부는 학점 인플레이션 완화를 권장하지만 과거에도 대학에 제도적으로 제재를 가한적은 없다”며 “대학 차원에서 자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종 대학 평가의 결과가 대학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교육부의 평가 방침이 대학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김규원 교수는 “재정적 압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뿐 교육부의 방침이 자율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 평가에서 하위등급을 받은 대학에게는 정원 감축과 재정지원 제한 등의 조치가 가해졌다. 본교의 경우도 지난 ‘2015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학생 평가’ 부분의 낮은 점수가 지적돼, C등급을 부여받은 바 있다(본지 1559호 1면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 발표, 우리가 C등급?’ 기사 참조). 그 결과 7%의 정원 감축 조치가 이뤄졌다.

교육부 권고에 대한 대학의 대처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은 교육부의 학점 인플레이션 완화 기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본교를 비롯한 전국 다수의 대학들은 최근 몇 년간 자체적으로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의 평가 기준 전환’이나 ‘재이수시 취득 가능한 최대 학점 제한’ 등 학사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정해왔다. 서강대학교는 한 학기당 재수강 최대 과목을 최대 2과목에서 1과목으로 축소했고, 부산대학교는 영어 원어강의를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했다. 본교 학사처도 지난 2월 ‘재이수 관련 규정 등 개정에 따른 학사 행정 예고’를 공지했다(본지 1607호 2면 ‘재이수 제도, 2020학년도 1학기부터 강화돼’ 기사 참조). 김유진 교수는 “‘2018 대학 기본역랑 진단’ 대면 평가 당시 대학평가본부로부터 본교의 높은 재이수율이 지적됐다”며 “여러 대외 평가를 고려했을 때 지금의 제도 개선도 시기적으로 늦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이해하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대학의 신뢰성을 위해서라도 학사 제도의 관리가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눈치보기식 학사 제도 개편에는 문제점이 따른다는 시각도 있다. 일정 학력 수준 이상을 성취한 학생에게는 높은 학점이 부여돼야 하는 것이 올바른 평가 방식인데 현재의 제도 안에서는 학점을 부여할 수 있는 비율이 정해져있어 학업 성취만큼의 학점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이수 시 취득학점에 제한이 생겨, 재이수를 통해 충분한 학업 지식을 획득한 학생의 성취도 보장해주는 데에 한계가 생기게 된다. 김규원 교수는 “입학 성적도 비슷한 같은 대학의 학생들은 학력의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억지로 비율에 맞춰 학점을 부여하는 것은 교수에게나 학생에게나 수용하기 힘든 제도”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교수가 자신의 강의에 대한 성적 평가를 자율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들어 교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인식도 있다. 김규원 교수는 “교육부가 나서서 권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교수집단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교수 본인이 학생 평가의 책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점 인플레이션은 사회 각 집단들의 이익 실현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을 대학의 부실한 학사 관리에만 지우고, 학사 관리를 학점 인플레이션의 억제에 지나치게 얽맨다는 비판도 있다. 김유진 교수는 “대학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점 인플레이션은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며 “학사 제도의 관리는 학점 인플레이션의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대학과 학생의 발전 방향을 고려해 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사 제도 전반에 관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전체적인 사회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있다. 2015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68%로 OECD 평균인 41%에 비해 크게 높은 편이다. 김규원 교수는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며 “사회구조의 개혁을 통해 격차를 해소하고 불필요한 대학 진학을 줄여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규원 교수는 “대학이 연구·직업 등 교육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특화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가 주도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은철 기자/jec16@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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