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모음집 표지

개인적으로 소설은 글로 그리는 미술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펜을 통해 세계를 묘사하고 소설을 통해 자신이 주목한 세계를 집약시킨다. 이 글에서 다룰 작품은 <세실, 주희>다. 세실과 주희는 이 작품의 주된 피사체이므로 이 두 인물에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세실, 주희>라는 작품에서 세실과 주희라는 두 인물은 두 개의 큰 기둥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형상은 마치 세실과 주희라는 기둥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들, 혹은 배경들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다. 그들은 날이 선 대립이라기보단 어색한 상황에서 나오는 불편한 동침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 말은 문화적인 차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선의 간극에서 나오는 갈등에 대해 풀어놓고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문화라는 것은 거대하기에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혹은 이미 우리 생각에 깊이 박혀있을 것이다. 세실은 친구 J와 함께 떠난 외국 여행에서 참회의 화요일이라는 축제에 놀러 갔다가 자신의 몸을 보이도록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인다. 심지어 자신이 강요당하는 상황이 버젓이 외국 성인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광경까지 목격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마르디 그라’, 참회의 화요일이라고 칭한다. 세실에게 그러한 문화는 경악스러운 행위일 뿐이었다. 세실은 외국에서 경험한 일을 그들의 문화라 생각하지 못한다. 이 경험은 끊임없이 그녀 자신을 괴롭힌다. 이러한 개인의 문화적 갈등은 작품이 진행되면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주된 충돌 대상은 주희와 세실이다. 사실 주희는 한국적 문화에 속한 인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주희의 생각이 모든 한국 사람의 문화적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실은 한국에 비치는 일본의 문화적 시선을 투영하고 있는 인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작가는 한 명의 일본인 세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세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고향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거나 그 연예인의 모국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무지한 모습을 보이며, 주희가 위안부 시위를 반전시위라 설명하자 세실은 자신도 반전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이 모습은 작가가 일본에 통용되고 있는 문화적 생각에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나타낸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자국과 타국 간 문화적, 사회적 차이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어떤 문화에 대해 우리가 무지한 것들은 일본 문화권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우리가 아는 것들에 대해 일본은 무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실은 순수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주희는 세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낯선 외국의 문화가 다른 곳에서는 널리 통용되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한 일본에서의 시각들도 어딘가에서는 정상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미 그렇기에, 작가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지 않을까.세실, 그리고 주희. 그들은 다르다. 다르기에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모르겠다. 그들에 대해서. 그렇기에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도엽(인문대 국어국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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