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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된 엄마, 집안일하는 아빠

조선희 탐사팀 정기자


누구나 어릴 때 소꿉놀이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꿉놀이에서 보통 남자아이들은 아빠, 여자아이들은 엄마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나는 항상 아빠 역할을 맡았다. 아빠 역할이 아니면 소꿉놀이에 참여하지 않거나 억지로 다른 역할을 맡으며 툴툴거리기 일쑤였다. 어른들이 “왜 아빠를 하냐”고 물으면 나는 “엄마가 되기 싫어서요, 전 돈을 버는 게 더 좋아요”라고 답했다. 어려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집안일을 하기보단 돈을 버는 가장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을 게다. 다섯 살짜리가 이런 말을 하니 어른들은 내가 특이한 아이라고 했다. 집안일도 하기 싫고 애도 낳기 싫기 때문에 결혼은 안 할 거라고 하면, 어릴 때에는 다 그렇게 말한다는 듯이 웃으며 “넌 일찍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했다. 어른들이 “여자는 엄마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몰라 망설이다가 “우리집은 엄마가 돈을 벌어요”라고 대꾸했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 “아빠도 돈 벌어,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아빠의 체면이 깎이잖아”라며 나를 타일렀다. 어린 나에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 만큼 컸을 때에도 머리로만 이해할 뿐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선생님이 “집에서 아빠가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물으면 손을 드는 아이는 나를 포함해 겨우 두세 명일 뿐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를 가리키며 “저 아이들의 아빠는 정말 훌륭한 아빠예요”라고 말했다. 어린 마음에는 아빠보고 훌륭하다고 하니 마냥 좋았지만 커 가면서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돈을 벌고 집안일을 하는데, 왜 엄마는 훌륭한 엄마가 되지 않고 아빠만 훌륭한 아빠가 되는 거지? 내 물음은 점점 커져갔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아빠를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자 또한 집안의 일원으로 집안일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내 물음에 스스로 답할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을 훌륭하다고 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었다. 나는 아빠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싫어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에 칭찬을 하는 사실이 불편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엄마가 돈을 벌어도 우리집 가장은 아빠고, 다른 아빠들에 비해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우리 아빠는 좋은 아빠”라고 말하던 엄마는 “우리집 가장은 나”라고 말하며 아빠가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내가 “우리집 가장은 엄마고 집안일은 부모님이 같이 해요”라고 말해도 이상하다고 말하거나 아빠를 얕잡아보는 사람이 없어졌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우리 아빠가 바보 같고 무능력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가장이 아니어도 딸들을 잘 챙겨주는 좋은 아빠고,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해도 집안일을 잘하는 훌륭한 아빠다. 어릴 때 “너는 아빠가 되면 안 된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아빠는 가정을 책임지는 멋진 사람이었지, 생물학적 아빠가 아니라고.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에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이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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