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탐구팀 팀장

지난 27일, 11년 만에 손을 마주잡은 남북의 두 정상은 종전을 선언하고 올해 안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로 합의했다. 이 판문점 선언으로 역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질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남북 관계에서 중요한 장면이 될 그 날6·25 한국 전쟁 정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생각해봤다. 그 차가웠던 냉전 동안 한반도는 가장 뜨거운 격전지였다. 나의 할아버지는 피난길에 눈이 침침한 고조할머니를 부축하면서 보았던, 낙동강 위로 시체가 떠다니는 참담한 광경을 잊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 상처는 정전을 통해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자신이 속한 국가가 가진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피 흘려야 했던 전쟁의 아픔은 무서운 트라우마를 남겼다. 정전을 통해 멈춘 것은 외부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다름을 적대시해야 했던 전쟁 이후의 현대사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전쟁을 불러왔다. 나와 다른 사람 혹은 사상을 적으로 만들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은, 반대로 언제 나를 적으로 돌릴지 모른다는 불신의 사회를 만들었다. 다름을 존중하기엔 너무 잔혹한 시대였고, 타인을 믿기란 더욱 어려웠다. 정치성향의 다름은 죄가 됐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적국의 사상에 동조하는 것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군홧발로 만들어진 권력은 자신들의 정당성과 기반을 북쪽의 적에 대한 반대를 통해 얻었다. 정적을 간첩으로 몰아 제거하기도 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하나의 시대정신이 됐다.시민들의 항쟁 끝에 권위주의 정권이 종식됐지만 그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 붉디 붉은 콤플렉스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비슷한 경제규모의 나라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는 우리가 가진 현대사의 아픔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이 되는 ‘불신지옥’이 우리나라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 주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종북 프레임은 여전히 흔한 정치공세의 장치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평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결과적 공정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조성됐다. 구성원 전반에 걸친 불신의 분위기는 우리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약시켰다. 경제적인 몸집은 좋은 풍채를 갖췄으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우리의 구성원들은 그만큼 행복해지지 못했다. 이제는 우리 안의 전쟁을 종전시킬 때다. 이번 종전선언이 단순히 남북 간의 평화 조성이 아닌 우리 안의 적대적 갈등을 종식시키는 선언적 의미가 되길 바란다. 정‘적(敵)’으로 몰고 가는 구시대적 정치는 그 수명을 다 해가고 있다. 우리가 정전의 시대정신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종전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4·27 판문점 선언을 실현시키는 것은 외부의 여건뿐 만이 아닌 우리 안의 종전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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