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은교?의 표지

우리는 늘 욕망과 도덕원리의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공격성이나 내적인 욕망은 억압되어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자리를 박차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욕구 중에는 표출해선 안 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성적인, 혹은 공격적인 욕구들은 조절이 잘 안 될 경우 너무나 원초적이라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이 표출하고 싶은 욕구들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박범신이 쓴 소설 「은교」에서는 이러한 욕구 표출의 갈등상황이 잘 묘사되어있다. 작중인물인 늙은 시인 ‘이적요’는 제자인 ‘서지우’에 대한 공격성,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 ‘은교’에 대한 성적 욕망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원초적 욕망은 내재화된 도덕에 의해서 끊임없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보이는 이적요의 모습과 그 자신의 욕망이 대립하며 억압된 것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인지 고뇌한다. 욕구 표출은 작중에서 이적요뿐만이 아니라 서지우에게서도 나타난다. 서지우의 내면에는 이적요에 대한 존경심과 질투가 서로 대립하고 그에 따른 욕망을 ‘은교’에게 내비친다. 이들의 욕망은 결국 은교로 귀결되어 작중의 갈등상황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인물들의 여과 없는 욕구 표출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손으로 차의 브레이크를 고장 내서 제자를 죽이는 이적요의 모습, 그리고 스승의 시선을 알면서도 은밀한 욕구를 표출하는 서지우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아찔한 상황을 느끼게 한다. 그들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그것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독자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어째서 서로를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했는지를 떠올리며 스스로의 도덕성에도 질문을 던진다. 도덕성이 해체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절망 속으로 달려가는 불나방의 모습을 보았느냐고 「은교」는 말하고 있다.현 사회는 표출된 욕구에 대한 조율이 더더욱 필요한 시기를 맞았다. 성적 욕망이 여과 없이 드러나 생기는 성폭력과 성폭행, 그리고 공격성을 드러내어 생기는 갑질 논란은 이에 따른 충분한 예시가 된다. 이들의 욕구 표출은 당연히 합당치 않다. 내리누르는 권력 구조에 따른 강압적인 힘은 도덕원리를 느슨하게 하며 개인의 욕망에 힘을 실어준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타인에게 표출되며 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들이 지게 될 것인데 그들의 모습이 과연 정상인지, 파국인지는 명약관화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모습을 토대로 파국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소설 「은교」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생각하지 않고 벌이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더욱 행동에 신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욕망 표출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은교」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모습처럼, 제2의 ‘이적요’ 혹은 제3, 제4의 ‘서지우’가 되어 나락 끝에서 자조적인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내 본능의 발화지점이었다. 불꽃이 일었다.… 발화는, 그렇게 끔찍했다

최현빈 (인문대 국어국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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