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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메아리

특별기고-대학의 본질과 적자생존의 논리

캠퍼스에 봄이 한창이고 학생들은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오고 간다. 이즈음에 다시 ‘대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꺼내 본다.
예로부터 대학은 진리 탐구의 장이라고 말해 왔다.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란 그것이 그것인 채로 드러나는 것이다. 누가 아무리 다른 논리를 갖다 붙인다 해도 진리는 그것 자체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른다.
우리 학교의 교육이념은 ‘진리, 긍지, 봉사’이다. 지방거점국립대학으로서 국립이라는 특성과 지방이라는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말 잘 들으면 재정을 잘 받쳐주겠다는 교육부의 눈치도 봐야 하고 수도권 대학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적자생존적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일류나 성공이라는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누구에게 성공했다고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가. 성공이란 학생들 스스로가 그들의 가치관에 따른 만족도로 나타나야 한다. 연봉이 높다거나 고시에 패스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학생들이 지금까지 소화불량인 채로 암기한 지식들을 자기 지식으로 변용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공급하는, 그 기본적 역할을 자청해야 한다. 교육지원 정책은 학생들이 무엇을 실현코자 하는가 하는 다양한 진로 탐색의 교양교육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인기학과를 중점 육성하려는 자본주의 논리는 대학을 기형으로 만든다. 학생 모두가 첨단을 지향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면 팔로우어는 누가 될 것인가. 진보 혁신을 좇아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의 부호가 되고 싶다면 리싸이클링산업에는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결핍이 많은 부모가 자녀를 닦달하듯이, 지방대학의 보수성을 타개하고자 오히려 첨단이라는 용어에 목줄을 매는 것은 아닌가.
시대가 급변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기술의 융합혁명을 선호한다 하더라도 기본은 바뀌지 않는다. 대학은 변화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기본 가치의 충실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곧 대학의 존재 이유이자 인류사회가 대학에 거는 기대이다. 모두가 동쪽을 가리킬 때 서쪽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미래사회에는 사람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기계의 숲에서 기계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기계와 인간이 동등할 수는 없다. 기계는 불완전한 인간의 발명품이고 사람다운 특성은 사람만이 갖는 고유한 것이다. 그 기본을 혼동하면 자칫 AI로봇과 결혼해서 멋진 자녀를 출산하는 방법까지 개발할지도 모른다. 4차산업혁명의 변수가 무엇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기본, 그것은 곧 인간이 인간다움을 누리고 지키는 것을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흔히들 학문의 입출방식을 읽기와 쓰기로 압축해 말한다. 쪼개고 분석하는 이성적 지식의 습득은 그것을 꿰매고 통합하는 보편적인 산출방식으로 표현된다. 전공지식은 교양 지식의 토대 위에서 그 수월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당연하게 말하는 그 이면에 성공지향과 일류지향의 기업 논리가 내재해 있지는 않은가.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무조건 끊어버리는 게 해법이라는 단순논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일류지향적 욕망 속에는 모든 것을 가성비로 따져야 안심이 되는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일류병을 희망으로 포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수자들의 진정한 고민은 학생들의 미래지향적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봉사’하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본다. 봉사란 봉사자 스스로의 삶의 질도 높여 준다.
학생들의 조별활동을 지켜보면, 그들이 처한 환경과 성격까지 보이는 때가 있다. 협업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거나 조원들의 말에 상처를 받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OO과 김 아무개 △△고시 합격’이라는 플래카드를 곧 성공신화로 간주하는 교육 풍토는 되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가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그런 교육의 비전은 없을까. 자신과 똑같은 삶은 이 세상 누구도 살 수 없었음을 ‘긍지’로 받아들이는 그런 탄탄한 인격의 소유자를 길러내 보자. 본질에 충실해 왔던 유수한 대학들의 전통이 다시금 부러워지는 요즈음이다.


남금희 교수(기초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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