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錯視)’는 시각이 인식하는 정보가 실제 대상과 다른 것, 즉 시각 인지 과정에서 생기는 착각을 의미한다. 시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않고, 정보가 신경망을 통해 이동하고 조합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대상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시각 인지 과정에서 착시는 어떻게 발생할까?●

착시는 시각 인지 과정에서 일어나는 착각이다. 즉 착시를 이해하려면 ‘시각’이 어떤 과정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시각은 기본적으로 눈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는 뇌로 이동한다. 뇌에서는 그 정보가 무엇인지 인식한다. 또한 정보가 제한돼 있거나 눈의 한계로 정확히 인식하기 힘들 경우에는, 뇌가 경험 및 기억을 동원하여 모자란 정보를 추론해 채우기도 한다.가장 먼저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은 눈이다. 빛이 눈의 각막을 통해 굴절되면 망막에 상(像)이 맺힌다. 빛의 상은 망막 뒤쪽 광수용기를 자극한다. 광수용기는 생물체가 빛에 의한 자극을 수용해 전기신호로 전환하는 기관으로, 명암을 감지하는 간상세포와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정보가 시신경으로 들어가는 지점에는 광수용기가 없다. 이 지점을 맹점이라 하며, 이 지점에는 상이 맺혀도 인지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눈은 두 개여서 서로의 맹점을 보완해준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맹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만약 한 쪽 눈을 가리면 맹점에 들어오는 정보는 보이지 않지만, 뇌가 그 부분을 추론해 정보를 채운다. 그래서 정보가 없다는 것을 실제로 체감하기는 힘들다.전기신호는 망막 신경절 세포*를 통해 뇌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오른쪽 그림과 같이 왼쪽 시야 정보는 우뇌로, 오른쪽 시야 정보는 좌뇌로 이동한다. 이렇게 시야 정보가 교차되는 지점을 시교차라 한다. 시교차로 교차된 두 정보는 각각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추론하는 데 쓰인다. 시교차를 통해 두 눈의 정보 차이를 뇌에서 인지할 수 있고, 대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시교차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두 눈의 정보 차이를 뇌에서 인지하지 못해 대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전기신호는 뇌로 가기 전 ‘외측슬상핵’이라는 기관을 거친다. 외측슬상핵은 전기신호를 시각피질*로 옮기기도 하고, 시각피질로부터 정보를 받기도 한다. 맹점에 비친 상이나 장애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정보는 뇌가 추론 과정을 통해 빈자리를 채운다. 채워진 정보는 다시 외측슬상핵으로 이동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뇌는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시각 정보로 인식한다. 외측슬상핵은 전기신호의 일부를 ‘상구’로 보내기도 한다. 상구는 자극에 반응하여 눈을 움직이는 기관이다. 가령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 눈을 고정시키거나 움직이는 물체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 등에 상구가 관여한다.외측슬상핵을 거친 전기신호는 1차 시각피질로 이동한다. 1차 시각피질부터 전기신호가 이동하는 기관들은 정보의 특징에 따라 각각 반응하는 신경세포들로 구성돼있다. 즉 1차 시각피질부터의 시각 과정은 받아들인 시각정보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과정이다. 가령 ‘단순세포’는 방향에 반응하는 세포이며, ‘복합세포’는 방향뿐만 아니라 움직임에까지 반응하는 세포다.이러한 시각정보들은 1차 시각피질에서만 처리되는 것이 아니다. 1차 시각피질을 거친 후 정보들은 각각의 특성을 인식하는 뇌의 기관들에 보내진다. 가령 3차 시각피질은 형태를, 4차 시각피질은 색을 인식하는 데 특화돼있다. 1차 시각피질 외의 시각피질을 ‘선조외피질’이라 부르며, 30개 이상의 선조외피질들이 시각에 관여한다. 이러한 시각처리영역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비로소 뇌는 대상을 ‘인식’한다.

그림으로 알아보는 착시

헤르만 격자

흰 선들의 교차로를 응시하면 다른 교차로에 회색 점들이 깜빡인다. 이 현상은 1870년 독일의 생리학자 루디마르 헤르만(Ludimar Hermann)이 처음 발견했고, 해당 격자는 그의 이름을 따 헤르만 격자라 불리게 됐다. 헤르만 격자에서 보이는 회색 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이들은 ‘수용장’과 밀접하게 관련돼있다. 한 세포의 수용장이란 그 세포의 활동을 증가 혹은 감소시키는, 세포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수용장의 모양 및 특성은 세포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다. 그중 망막 신경절 세포의 수용장은 일반적으로 원형이며 중심영역이 작고 주변이 넓은, 계란 프라이와 비슷한 모양이다.수용장에는 두 가지 유형이 각각 비슷한 수로 분포돼있다. 수용장을 계란 프라이에 비유해보자. ‘중심-흥분 수용장’은 빛이 노른자(중심부)를 자극시킬 때 활성화(흥분)되고, 흰자(주변부)를 자극시킬 때 감소(억제)한다. 반대로 ‘중심-억제 수용장’은 빛이 노른자를 자극시킬 때 감소하고, 흰자를 자극시킬 때 활성화된다. 수용장이 흥분하면 신경절 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해 빛을 밝게 인식하고, 반대로 억제되면 어둡게 인식한다.빛이 수용장 전체를 자극시키면 흥분과 억제가 상쇄되어 신경절 세포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다. 마찬가지로 빛이 수용장 바깥에 도달해도 신경절 세포의 행동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즉 신경절 세포가 반응하려면 빛이 수용장을 부분적으로 자극시켜야 한다. 이는 신경절 세포가 모서리 같은 빛이 변화하는 곳을 찾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는 변하지 않는 빛을 무시하면 정보 처리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막은 빛의 변화만을 감지하는 체계이며, 빛이 변하지 않으면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인간의 눈은 안구 근육들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를 ‘떨림’이라고 한다. 떨림이 없다면 눈은 빛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모든 세상이 회색으로 보인다.다시 헤르만 격자로 돌아가 보자. 교차로에 놓인 중심-흥분 수용장 하나는 일직선 상에 놓인 수용장에 비해 주변부에 더 많은 빛을 받는다. 이는 교차로에서 비교적 강한 억제가 일어남을 의미하며, 교차로에 있는 신경절 세포의 활동을 감소시킨다. 반면 거리에 있는 신경절 세포는 비교적 약한 억제를 받아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교차로 지점은 비교적 낮은 밝기로 보이게 되고, 교차로에 회색 점이 깜빡이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를 응시하면 그 위치에 있는 대상은 망막의 중심와*에 맺힌다. 중심와는 원추세포가 주를 이루며, 중심와에 맺힌 대상은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중심와의 수용장은 주변 망막의 수용장보다 크기가 작아 헤르만 격자에서 교차로의 넓이를 채우지 못한다. 그래서 응시하고 있는 교차로는 회색 점 없이 선명하게 보인다.

뮐러-라이어 착시

그림 속에 있는 두 선분을 비교해보자. 위쪽 선분이 아래쪽보다 더 길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자로 길이를 재보면 두 선분의 길이는 같다. 이는 독일의 심리학자 프란츠 뮐러-라이어(Franz Muller-Lyer)가 고안한 ‘뮐러-라이어 착시’다. 무엇이 두 선분의 길이를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할까.대상의 크기를 인식할 때는 ‘깊이정보’가 매우 중요하다. 가까이 있을수록 크게 보이고, 멀리 있을수록 작게 보이는 원근법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 뇌는 두 눈의 정보 차이를 통해 대상을 입체적으로 인지한다. 즉 두 눈은 대상의 크기와 깊이를 평면적으로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고, 뇌는 그 정보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추론한다. 따라서 사물과의 거리나 보이는 크기에 상관없이, 대상의 실제 크기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비교적 정확하다. 이를 ‘크기 항등성의 원리(law of size constancy)’라고 한다.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그레고리(Richard Gregory)는 1966년 그의 논문에서 뮐러-라이어 착시를 크기 항등성의 원리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선분 끝의 날개로 인해 각각의 선분을 입체로 착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위쪽 선분은 안으로 움푹 들어가고, 아래쪽 선분은 위로 볼록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크기 항등성의 원리가 적용되어 우리는 볼록한 선분을 상대적으로 짧게, 오목한 선분을 상대적으로 길게 인식한다. 이를 ‘잘못 적용된 항등성 비례화(misapplied size constancy scaling)’라고 부른다. 왼쪽 그림의 ‘폰조 착시’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에서 위쪽 선분이 아래쪽보다 더 길어 보이는데, 이는 길이 좁아질수록 멀어진다는 인식으로 잘못 적용된 항등성 비례화가 일어난 사례다.하지만 선분 끝의 날개를 원으로 바꿔도 착시는 여전히 일어난다. 그레고리의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자, 호주의 심리학자 로스 데이(Ross Day)는 1990년 그의 논문을 통해 갈등단서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수직선의 실제 길이는 같지만 그림의 전체 길이가 달라 두 단서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즉 뮐러-라이어 착시의 경우 아래쪽 선분이 위쪽 선분보다 전체적인 길이가 더 길기 때문에 선분의 길이도 길어 보인다는 것이다.

*신경절 세포(神經節細胞): 망막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뇌로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세포

*뇌량(腦梁): 좌뇌와 우뇌가 만나는 부분

*시각피질(視覺皮質): 두뇌 양쪽 후두엽에 있는, 시각 정보처리에 직접 관여하는 영역

*중심와(中心窩): 망막의 중심부에서 약 1.5mm 정도 함몰되어 있는 부위. 눈의 각막 중심에 수직으로 들어온 빛이 맺히는 부분이다.

자문곽호완 교수(사회대 심리)

참고문헌『시각심리학의 기초』(Robert Snowden 외 2명)『감각과 지각』(김정오 외 6명)

▲ 헤르만 격자(Hermann Grid)

▲ 뮐러-라이어 착시(Muller-Lyer illusion)

▲ 변형된 뮐러-라이어 착시

▲ 폰조 착시(Ponzo illusion)

유동현 기자/ydh17@knu.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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