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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연예인 아이린이 페미니스트(Feminist) ‘논란’에 휩싸였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논란이라는 단어는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이린은 페미니스트다? 라는 문장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툴 만한 주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은 뉴스로 대중에게 전달될 만한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여성은 차별을 받는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이상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태권도장을 다닌다고 ‘남자같다’는 놀림을 받았다. 항상 웃지 않는다고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교복치마를 무릎 위로 올라오게 입는다고 혼났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얇은 교복상의를 입었을 뿐인데 ‘야하다’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 수업자료의 오타를 지적해서 ‘당찬 아이’가 됐다. 너는 ‘차분’하니까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칭찬을 들었다. 저녁 9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 걱정을 들었다. 혼자서 서울에 간 날에는 집에 실시간 보고를 했다. 혼자 가는 여행은 허락받지 못했다. 회식을 마치고 혼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다섯 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 남학생과 단 둘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다. 내가 남학생이었다면 지적하지 않았을 일들을 교사들은 지적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고, 차분한 성격이 교사에게 크게 중요한 자질이 아님에도 교사라는 직업을 추천받았다. 남학생이라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 할 만한 일에 나는 짜증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각종 통계자료를 확인하지 않고도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페미니스트는 말 그대로 ?페미니즘(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페미니즘은 오염된 페미니즘이다’나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상하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페미니즘이 아닌 것이지 페미니즘 자체가 오염된 것은 아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여성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할 때부터 활발한 여성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페미니즘도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100여 년이 넘게 이어져왔다. 이 정도면 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인지할 때다. 또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또 다른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아닐 때도 됐다.

권은정
탐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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