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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해결법과 펜스룰


선임이 후임의 머리를 수통으로 찍어 후임이 두부에 상처를 입은 사건의 해결 방법

일반인 : 왜 싸웠는지 전후 관계를 파악해 가해자를 징계 처리하고 피해자를 보살핌
군대 : 수통을 걷어가 훈련 때에만 지급


‘군대식 해결법’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유머글의 한 단락이다. 군대 내의 실화에 기초해 만들었다는 이 글은 수많은 군필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고 바로잡기보다는 그 사안과 관련된 엉뚱한 요인을 원천 차단하는 우리나라 군대의 문제 해결방식을 비꼰 것이다. 이런 마초적인 해결 아닌 해결법은 대한민국 사회의 큰 병폐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이뤄지는 가운데 ‘펜스룰’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펜스룰은 아내가 아닌 여자와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원칙에서 따온 말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지켜온 펜스의 신조가, 한국 사회에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직장 내 성폭력 문제의 대처법처럼 과장돼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문제에 엮이지 않기 위해 회식에 여성 직원을 초대하지 않거나, 여성과의 업무대화를 최대한 자제하고, 출장에서 여직원과 동행하지 않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조직에서 여성과의 접촉을 원천 배제하는 논리로 확장돼 직장 내에서 여성을 따돌리는 것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연히 직장 안에서 여성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여성의 경쟁력 약화는 여성채용 감소, 직장 내에서 여성의 지위 약화를 불러오기에 펜스룰이 또 다른 성차별을 내포하고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펜스룰은 군대식 해결법과 너무나 닮아있다. 군대는 싸운 이유를 알아보지 않았고, 조직은 젠더 권력 문제를 바라보려하지 않고 있다. 더욱 무서운 점은 그 대상이 여성이라는 ‘인격체’인 것이다. 군대는 군인의 허리춤에서 수통을 치워버렸고, 조직은 업무에서 여성을 치워버리려 하고 있다. 군대식 해결법이 담긴 글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볼 수 있지만 펜스룰로 인해 직장 내 여성들이 처할 상황은 전혀 우습지 않다. 미투 운동에 대한 조직의 대응이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현재 펜스룰이 대두되는 것은 직장 내 성폭력 문제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터무니 없는 해결책을 내놓는 것과 같다. “성추문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여성 직원을 피한다”는 얘기가 “이게 다 여자 때문이다!”의 건전한 버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럴 때면 터져나오는 말이 ‘그것도 불만이면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라는 볼멘소리다. 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구호는 너와 함께한다는 뜻의 ‘위드 유(#WITHYOU)’다.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문제지를 찢어버리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쉽게 해결하려 하는가, 그토록 잔인하게 말이다.


김민호

탐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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