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총알에는 발포자의 욕망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발탄은 잘못 쏘아진 탄환이다.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의 작중 인물 철호는 자신을 조물주의 오발탄이라 칭한다. 가속도가 붙은 탄환은 어디로든 가서 처박히지 않는 한 계속 날아간다. 종착점을 알 리 없다. 이미 그 태생부터 목적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발탄’이 되기 전 철호에게도 분명 나름의 꿈과 삶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삶의 터전이 뒤바뀌고 생존의 문제에 내던져진 후부터 그의 삶은 막연하고 무력할 뿐이다. 

목적 없는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어떤 사회적인 환경에 의해 재단된다면, 그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 아닐까? 작중에서 철호와 영호, 그리고 명숙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들은 원치 않는 것을 선택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면서 결국 파멸로 수렴할 뿐이다.

작중 사냥감의 비유가 인상 깊었다. 자신의 모습을 원시인이라 칭하는 철호가 사냥을 나서지만 잡을 만한 사냥감은 토끼밖에 없다. 그러나 그조차도 토끼 머릿수보다 많은 사냥꾼 때문에 잡기 힘들다. 결국, 사냥에 실패한 철호가 숲에서 찾아낸 것은 내장이었다. 자신이 직접 사냥한 동물의 것이 아닌 숲 어딘가에 버려져 있던 내장, 즉 찌꺼기였다. 이 대목을 읽다 문득 토끼 사냥이 우리네 대학생들에게 공무원 시험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준비해볼 만하다고 여겨지기에 시작하지만 뽑는 자리에 비해 준비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소위 공시생이란 단어도 공공연히 쓰이는 시대다. 패기와 열정보다 짙은 무력감이 대학가에 만연해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무력감에 젖어있는 이들은 비단 우리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수많은 사람이 서로 경쟁하고 아파하면서 철호의 독백을 곱씹고 있다. 자녀 구실, 배우자 구실, 부모 구실, 형제 구실 등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과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범선이 그린 오발탄의 세계는 철저한 비극들로 점철돼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감정의 과잉은 없다. 화해나 타협의 여지 없이 그저 묵묵히 상황을 그려낼 뿐이다. 그래서인지 연민이나 아픔의 감정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선명하게 다가온 비극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직시한 후에 서서히 차오르는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아프고 처연하다. 마지막 택시 안 장면을 보며 누구에게나 힘든 이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우리도 목적 없이 허공을 부유하는 오발탄이 아닐지, 고민해볼 화두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김도훈

(인문대 노어노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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