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받으면 답을 하지 못해 곤란한 때가 있다. 그게 논쟁적인 문제이거나 정해진 답이 없을수록 더 그렇다. “문학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라는 첫 질문부터 나를 포함한 많은 학우들의 말문이 막혔다. 교재를 달달 외워서 기계적으로 답안을 채워나가는 강의에 익숙해진 나는 문학사 강의 시간이 불편했다. 처음에는 강의를 잘못 신청했다고 생각했던 수업에 대한 내 첫인상은 얼마가지 않아 역전되었다.

첫째, 강의는 플립드러닝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플립드러닝의 핵심은 온라인 선행학습 후에 오프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것인데, 실제로 상당히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먼저, 온라인 선행학습을 통해 부족한 배경지식을 쌓거나 주도적으로 배경지식을 넓혀나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유용했다. 특히 러시아 문학사 강의에서는 이 점이 중요했는데, 이 수업은 러시아 문학에만 국한되는 강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모르거나 생소한 부분이 나오면 강의를 멈추고 즉시 인터넷을 통해 검색할 수 있었고, 본인의 수준에 맞는 자료를 통해 개별 학습할 수 있었다.

둘째, 수업방식도 생소했는데, 교수님도 참 독특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은 앞에서부터 채워 앉도록 하셨고, 핸드폰과 잡담은 절대 금지였다. 모르는 것은 핸드폰이나 학우가 아니라 본인한테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런 모습에서 교수님이 강의에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셨다. 교육 개혁가 훔볼트는 대학의 정의를 “교수와 학생의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 진정한 대학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셨다. 과연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대학의 가치를 잘 실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전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던 것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셋째, 중간고사 이후는 플립드러닝 형태가 아니라 대부분 학생들의 발표로 이루어졌다. 

발표에 대한 질문과 반박을 보고 투표로 점수가 갈리는 형태였기 때문에 발표를 허투루 준비해오는 조는 없었다. 교수님의 강의에 비해 질이 떨어지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학생들의 발표가 비슷한 눈높이에서 설명해서 알기 쉬운 경우도 많았다. 

특히 질문과 반론 및 토론 시간에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의 처음에는 문학의 정의가 무엇인지조차 선뜻 답하지 못했던 학우들이 이제는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러시아 문학에서 나타나는 작은 인간에 관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무저항주의에 관해 말하고, 열띤 질문과 반박을 이어나갔다. 그런 후에는 교수님의 보충 설명이 있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면 학생은 잠자코 듣는 것이 강의라 여겼던 내게, 이 강의는 여태까지의 생각을 뒤집어 버렸다. 지금까지 강의를 수동적으로 수용해왔던 것에 대해 반성함과 동시에 교과서나 대학의 학습자료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활용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학습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다. 내게는 러시아 문학사가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도끼가 되는 강의를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황성재

(인문대 노어노문 13)

- 위 글은 교수학습센터 주최 제11회 ‘다시 듣고 싶은 수업’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의 편집본입니다.

특별판은 학과 및 도서관에서 열람 가능하며 교수학습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파일로도 열람 가능하다.

ctl.knu.ac.kr / 053-950-7023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