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마지막으로 쓰는 칼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무엇을 써야 후회가 남지 않고,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좋은 필력도 아닌데, 뭘 그렇게 잘 하고 싶어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자괴감이 짙어진다.

3년간 기사를 써왔지만, 칼럼만큼 쓰기 싫었던 글이 없었다. 독자들에게 실례인 말일 수 있지만, 내 글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내 칼럼을 보면 늘 부끄러웠고 부족함만이 보여 싫었다. 자신의 주관이 확실하거나 글 자체를 물 흐르듯 써내려갔던 기자 동기들이 항상 부러웠다. 내 글의 장점과 내가 가진 능력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기사를 쓸 때가 가장 좋았다. 현상에 대한 관찰, 객관적 지표를 토대로 한 해석을 바탕으로 ‘어떻게 써야 재밌을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가장 편했다. 내 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 포장해, 사람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경북대신문 이한솔 기자’로서 임기가 끝나갈 때에서야, 이제야 기자로서 쓴 첫 칼럼, ‘전학대회, 공론의 장인가 밥그릇 싸움인가’를 다시 봤다. 당시에 있었던 ‘임시전교학생대표자회의’를 참관 한 후 쓴 글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그 글을 썼던 스스로가 생각보다 괜찮게 느껴졌다. 사실 당시 칼럼 마감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글이다. 스스로의 열등감에 갇혀, 인터넷신문에 나란히 나열된 동기들의 칼럼과 함께 있는 내 칼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 나는 왜 내 글을 더 아끼지 못했으며 나를 좀 더 존중하지 못했을까. 당장은 부족함이 크더라도 그것을 직시하고 교정하려 노력했다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스스로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결국 3년 동안 썼던 칼럼들을 모두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 ‘잘’ 해야 했었다고. 뭐든 한 번도 눈에 띄게 못해본 적도, 잘해본 적도 없는 나였다. 그렇기에 경북대신문에 입사하자마자 느꼈던 압박감. 다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잘 쓰려 하는데 내가 망치면 안 되지. 잘해야지.

심리학에서 ‘우울’을 배울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다. “우울한 사람은 자꾸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산책을 나갔다 오래도 꼭 비 오는 날 나간다”며, 그리고는  “내가 가는 날만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돼 다시 우울 수준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라는 말. 내 글을 아끼지 못해 스스로를 한계에 가둔 것은 나였던 것이다.

문득 떠오른다. 친구에게 했던 말, “사람이 어떻게 처음부터 잘해~ 못할 수도 있지!” 자신을 모른 채 친구에게 했던 말. 부족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봤던 3년이었다.

수없이 말했던, 이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말, “경북대학교 학보사, 경북대신문 이한솔 기자입니다” 끝은 늘 그렇듯 시원섭섭하다. 

이한솔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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