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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메아리

열린글터 작가모집 - 소설 부문 '시뮬라크르 (2)'

>>지난 호에 이어

꽃집은 애써 외면하고 발 밑의 사람들을 본다. 수많은 사람 중에도 같은 시간에 항상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움직인다. 끊임없이. 어딘가 목적지가 분명한 비행기처럼 선박같이. 길 위의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멈추어 선다고 뒷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비켜 가면 그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마치 나 여기 살아있다고 아우성치듯이 움직인다. 꽃집 옆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는 항상 흰색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고, 하얀 연기가 끊이질 않고 나온다. 먼 허공을 응시하며 피우는 사람. 쪼그려 앉아 폰과 담배에 골고루 손길을 나누어 주는 사람. 조금 젖은 보도블록 틈새에 빠지기라도 할까 조심하며 피우는 사람. 여기 사람들은 멈추어 있다. 적어도 두 다리는. 
꽃집 건물의 3층에는 카페가 있다. 그곳 또한 통유리로 이루어져 가보지 않아도 나는 그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가게의 깊숙한 안쪽 테이블부터 창 바로 옆에 위치한 테이블까지. 창 테이블과 복사기는 거의 같은 높이이다. 그리고 그 테이블은 가장 먼저 자리가 차고 빈 의자를 보기 힘들다. 두 다리가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자리. 어쩌면 멈추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아닐까.
 
 -은영 씨, 어제 복사 맡긴 거 지금 주세요.

 -네?

 -어제 제가 복사 맡기면서 원본 저 주지 말고, 앞으로 자주 복사해야 하니 가지고 있어 달라 한 것 있잖아요. 그거 지금 해달라고요.

 -네.

 -A 제품 계획서.

 -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분명 어제 받아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까진 기억난다. 점심이 지난 지금 몇 번 앉지 못한 의자에는 이미 이름 모를 누군가의 외투가 걸쳐져 있고 책상 위에는 잠깐 올려놓겠다는 서류들과 책들로 부산스럽다. 힘없이 뒤적거리다 복사된 계획서를 찾았다. 분명 50장을 복사 해달라더니 왜 이렇게 많으냐며 48장을 가져가고 2장을 다시 건네주던. 그 두 장 중 하나일 것이다. 어제의 복사된 계획서를 집어 드니 날 선 눈빛이 느껴진다. 그 눈빛을 마주하면 아마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대신 날 선 용지의 각진 모서리를 가만히 응시하다 복사기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덮개를 열고 닫고 창을 바라보는 나의 일을 계속한다. 은미 대리. 첫 출근부터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유난이었다. 그렇게 비슷하다는 이유는 갖가지 부탁의 명분이 되었고, 복사를 잘한다는 칭찬. 회사는 그런 사원의 장점을 살려주는 선진기업. 복사를 잘한다는 것은 뭘까.
 
 -여기 복사 요청하신 것 가져왔습니다.

 -거기 둬.
 
 
 퇴근길. 비가 온다. 벚꽃 잎에 빗물이 떨어진다. 온종일 부산스럽던 낮이 지나 조용해지려던 밤늦게 비가 온다. 벚꽃 잎이 스며든 길 위에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포근한 느낌마저 드는 게 봄비인가 한다. 하얀색에 가까운 그 잎들을 하나둘 집어 겹쳐본다. 연하기만 하던 분홍 잎이 더욱 진해진다. 가장 진한 중심부부터 조금씩 연해지는 가장자리로. 그렇게 두툼해진 꽃잎을 흩뿌려본다. 다시 겹쳐지지 않도록 있는 힘껏 흩뿌린다. 날리는 벚꽃 잎들은 질서없이 바닥에 가라앉더니 어느새 스며든다. 그 모습에 잠시 주의를 팔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꽃집 3층의 카페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네.

 깨알 같은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는 대신 폰을 내밀어 바코드가 찍히길 기다린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네.
 
 인기 많던 창가 자리 테이블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종일 보던 바깥 풍경이지만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꽃집과 흰색 차는 보이지 않는다. 블라인드 처진 어두운 사무실 안에 내 자리가 어디쯤일지 가늠해 본다. 그러다 밑으로 이동한 시선은 회사 1층의 마감 준비로 분주한 식당에 머문다. 아마 마감 시간이 밤 10시쯤이 아닐까. 의자를 올리고 바닥을 쓸고 닦는 것을 보다 문득 테이블 위로 뒤집어져 올려진 의자의 모습이 꽃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테라스에 위치한 꽃게들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흠뻑 머금었고 그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10시 30분 꽃게들은 다시 의자와 테이블로 분리된다. 항상 비슷한 시간에 꽃게가 될 것들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은미 대리의 복사 일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복사된 것을 복사. 복사의 복사. 복사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하자니 현기증이 인다. 원본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렴. 앞으로 필요하다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되는 것을. 당연한 일인 듯 정리되는 사고가 낯설었고 날 선 눈빛을 피하던 모습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가뿐한 마음으로 시선 밑에 펼쳐진 움직이는 우산들이 그리는 동그라미들을 좇다 일어선다. 꼭 무당벌레 같다. 시시각각 땡땡이 무늬가 바뀌는 신기하고 거대한 무당벌레. 그 위의 나.



>> 다음 호에 계속



장종원
(농생대 농업토목공학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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