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남양’이었다. 대리점 직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을 퍼붓는 남양 직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물론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직원 한 명 한 명의 인성까지 어떻게 기업이 다 관리를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이 논리가 유효하려면, 그러니까 개인의 문제가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문제로 연장되지 않으려면 책임을 보여줘야 한다. 그 개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충분히 교육시키고, 그 개인과 ‘함께’ 책임자의 사과가 필요하다. 진심 어린 사과 말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유감스럽다” 이 따위의 것은 사과가 아니다. 결심했다. 가치소비를 해야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으로 칭찬하고 자본으로 벌한다. 우리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경제학에서 소비자의 소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가격이다. 나는 그때부터 비경제적 인간이 되었다. 슈퍼에서 우유를 살 때도, 편의점에서 커피를 살 때도 가격표보다 제조사를 먼저 보기 시작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제일 싼 제품이 남양일 때가 많았다. 유혹이 컸다.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고, 나 하나 남양 제품을 안 사먹는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의 불매는 그들에게 털끝 하나만큼의 피해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나까지 그렇게 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상은 어찌됐든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옳은 곳이 되고 조금 더 ‘살 만해져야’ 하는 것이다.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의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희망이 자본을 이겨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자본을 위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자본주의가 돼야 한다.하지만 남양은 시작에 불과했다. 3년간 영업이익 총액에 해당하는 임금을 체불한 이랜드와 그 아래의 수많은 계열사(스파오, 애슐리)들, 땅콩 회항의 대한항공, 경비원을 폭행한 회장이 운영하는 미스터피자, 차량결함의혹에 무조건 운전자 과실이라는 현대자동차, 백혈병에 걸린 직원의 입을 막으면서도 전 정부에는 충성했던 삼성까지. 내가 걸러야 할 기업들은 너무나 많았고, 나도 모르게 소비하는 일도 많았다.사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 기업들을 모두 불매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산에 들어가야 가능한 것이다. 또 알려지지만 않았다 뿐이지, 내가 모르게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기업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일이라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내가 아는 범위에서만큼이라도 가치소비를 하자. 옳지 못한 기업에게는 지갑을 닫자.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기업의 제품을 사자. 이 결심을 점점 더 지키기 힘들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지저분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한 번 잘못했다고 그 기업을 사장시켜버리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 소비를 하는 우리가 ‘고객님’으로 대접은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것마저 무너지면 말 그대로 천민자본주의의 ‘호갱님’이 되는 것이다. 잘못한 기업이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것은 소비자, 바로 당신이다.

옥동진(인문대 노어노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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