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나갈 즈음의 토요일, 오랜만에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TV 앞에 모여앉아 셋이 맥주를 한 잔 하던 중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영됐다. 정치권력의 방송 장악과 언론인 탄압에 관한 내용이 주제였다.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9년 동안 언론의 눈과 귀를 막은 것, 언론인들을 불법 사찰하고 탄압했던 것…. 술이 들어가서인지 부모님 앞에서도 막말이 나왔다. “쓰레기들 너무 많아, 이게 나라야? 저 XX들 누가 정치하라고 앉혀놨어?”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런 나라에 살게 해서 미안해.”

언론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최근 밝혀진 교육계 정치권력 개입과 속칭 블루리스트(국립대학교 총장 임용 과정의 청와대 개입)까지, 구석구석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다. 지난 9년 동안 언론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초등학생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공정한 뉴스’ MBC 뉴스는 사람들에게 ‘MB’씨를 대변하는 뉴스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많은 언론인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일상생활에서까지 위협을 받았다. 예술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없었고, 자칫 ‘가해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했다가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서는 “판사님,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유행으로 돌았을까. 그래피티 하나를 그려도, 노래 가사 하나를 읊어도, 인터넷에 글 하나를 적어도 ‘가해자’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영화와 연극은 ‘가해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크린과 극장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였다. 지난 9년이 그러했다.

그 시간 동안 교육계도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중·고등학생들은 역사를 ‘가해자’가 통일해서 직접 만들어주는 국정교과서로 배울 뻔했다. 대학에서는, 특히 경북대학교를 비롯한 국립대들은 자율적으로 학교를 꾸려나갈 권리와 총장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빼앗겼다. 그 후 수 개월 동안 총장 없는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 그 사이에 발생한 구조적·재정적 피해, 1순위 총장 후보자가 왜 임용되지 않은 건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구성원들…. 이 모두에게 아직까지도 상처가 남아있는데 가해자는 없단다. 언론 탄압을 최종적으로 누가 지시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있지만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람은 없으며, 국정교과서는 폐지했으니 문제가 없고, 1순위 총장 후보자가 임용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없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에게 탄압당하고, 감시당하고, 자율성을 뺏겼던 것일까? 지금도 우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은 ‘쉐도우 복싱’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엔 피해자만 있다. 가해자가 없다. 바글바글 끓었던 가해자들이 지금 이 세상에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피해에 대한 책임을 그 누구도 지지 않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 많은 가해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피해자들은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낫지 않은 상처를 보며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중인데 말이다.

조현영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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