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 내가 살던 동네는 아파트 뒤 축구장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바다의 짠내 나는 바람을 사시사철 맞을 수 있는 조그마한 곳이었다. 사이좋게 초등학교 하나, 중학교도 하나, 고등학교도 하나. 흔한 프랜차이즈조차 손에 꼽았던 동네의 허름했던 파출소. 허름한 파출소만큼 허름했던 경찰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는, 꼭 지금의 날씨와 같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동네 아주머니들끼리의 계 모임이 있었고, 즐거웠을 1차를 마친 밤 11시. 흥이 오른 아주머니들은 2차로 노래방을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편이 외출 허락만을 받은 채로 2차를 간 아내를 위협하며 걸쭉한 십 원짜리 욕과 폭언을 내뱉는 상황이 벌어졌다. 함께 있던 아주머니들은 파출소에 신고했고 경찰이 달려와 상황을 끝내주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그 남편의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지 말고 어서 사라져”라는 서슬 퍼런 기세에 경찰 둘은 기가 눌렸는지 말리는 시늉만 하다 바람처럼 사라졌다. 당시 잔상이 아직까지 어른거린다.

사회가 그런 것이었을까, 10년 전이었고 작은 촌 동네였기에 집안일이란 변명이 통한 것이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잊히질 않는다.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집안일이란 핑계의 타당성이 적용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한 사건에 따르면 지난해 3월, 37년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60대 아내가 남편을 장식용 돌로 내리쳐 숨지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지난 20일 아내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재판부로부터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37년간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녀들을 위해 참고 견뎌온 점’과 ‘가정폭력에 정신적·육체적으로 시달린 나머지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나머지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며 내게 생겼던 많은 의문들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37년간 가정폭행에 시달린 아내’를 보며, 그녀는 왜 가정에서 무한정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었는지, 그녀는 가정을 지킴으로써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었는지, 왜 37년간 범죄현장은 지속됐는지.

10여 년 전 부조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신고를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 출동해봐야 폭행이 일어난 뒤, 기껏해야 주변 순찰강화, 가정폭력 피해자가 살인할 용기가 있었으면 상담소를 갔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검사의 한 마디. 역하다. 불륜과 같은 부도덕한 문제에는 손가락질하며 입 놀리기 바쁘면서 가정폭력이란 범죄는 왜 부부간 문제, 가족의 문제로만 보는지.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 갇혀 가정이 삶의 1순위이며 가정의 평안만이 내 행복인 우리네 어머니들이 평생토록 살아온 삶의 결과 중 하나라는 사실이 아프면서도 화를 부른다. ‘가족이니까’가 지닌 이중적 의미가 질리도록 싫은 현실이다. 나는 어머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한솔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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