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나?”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높은 걸 눈치 챘다. 술 한 잔 하신 듯했다. 응. 짧게 대답하니 휴대폰 너머로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어디서 먹었는지 등의 물음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빠의 레퍼토리가 있다. 그 레퍼토리 중에는, “니 OO이 삼촌 알제?”로 시작하는 것도 있다. “OO이 여동생이 이대를 보냈더니 거기서 라면만 먹고 죽었단다.” 아빠는 마치 처음 하는 얘기처럼 말하지만 나는 이미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스토리였다. 아빠의 절친한 친구의 동생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해 일찍 숨을 거뒀다는 사연이다. “그 얘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해.” 썩 좋은 얘기는 아니라 인상을 구기고 말하면 아빠는 “다 네가 걱정돼서 그런다아이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또다시 묻는다. “밥은 먹었고?”

작년 9월 서울 서대문구에서 29세. 지난 5월 대구 수성구에서 36세. 지난달에는 부산 연제구에서 29세. 이 청년들은 모두 작은 원룸 또는 빌라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가족과 연락을 끊은 지 오래였다는 점 또한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친구나 직장동료도 연락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즉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그 누구도 즉시 달려와 줄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 누구 하나도.

기사를 읽는 내내 속이 쓰렸다. 고독사(孤獨死), 자기부양력이 없는 노년층에서 심각하게 발생하는 사회 문제가 청년층에서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남 일 같지가 않다. 1인 가구 500만 시대에 수많은 청년들이 불황과 취업난 속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개중에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취업을 위해 서울에 잠깐 머물기도 하고, 부모님과 맞지 않아 따로 집을 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청년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은 주거 빈곤과 파편적인 사회관계 속에 놓여있다. 이제 사회는 단순히 이들을 사회 부적응자라고 낙인찍을 수 없다. 직장인이든 취업희망자든 강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월세 감당이 안 되는 단칸방에서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개인이 겪는 문제는 그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적 의식이자 관계이지만 현실의 개인들은 이를 무감하게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꽤 오래 전에 일본에서 ‘무연사회’라는 말이 등장했다. 1인 가구 증가, 경기 침체, 청년 실직,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말 그대로 무연고, 즉 인간관계가 약해진 사회를 뜻하는 말이다. 나 또한 그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시시때때로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어느 청년의 고독사처럼 정말 사회로부터 나 자신이 완전히 단절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아주 의외의 순간에서다. 당신의 지겹고 일상적인 한 마디, “밥 먹었나?”로부터. 당신의 한 마디는 내가 바쁘게 하던 일을 멈추고 마침 끼니를 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라면으로 때우려다 좀 더 질 좋은 음식을 찾아 먹게 만든다. 그러니 이 강퍅한 세상에서 어쩌면 지금 당신에게도, 서로에게 아주 일상적이고 조금은 다정한 인사가 필요한 것일지 모르겠다.

“밥은 먹었어요?”

김서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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