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전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들과 나누는 대화의 많은 부분들은 대개 단편적이고 무의미한 것들로 보인다. 그러한 대화가 진솔한 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정작 그러한 관계를 끊지 못한 채 항상 타인들에게 둘러싸인 삶을 유지하려고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께서는 항상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셨다. 혈연, 지연, 학연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 간의 관계는 곧 기회이고 나를 위한 투자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러한 가치관 속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항상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남들과 함께했고 대화 주제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좋은 선후배 관계를 위해 하지 않아도 될 호의를 베풀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느새 강박증처럼 대화의 공백이 불러오는 침묵에 불안감을 느끼고 항상 문자와 SNS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즉 나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얕은 관계들이 차츰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내게 힘이 되고 또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고 후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시간이 나면 혼자서 대구 시내를 활보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는 날을 잡고 아무 버스에 올라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러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방학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타 지역을 여행한다. 주위 사람들 중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나는 완벽히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결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와 같이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진지한 생각까지, 모두 나의 입장에서 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 생각들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기회를 얻게 된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미래의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지, 어떤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편안함과 즐거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나에게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선택권을 줄 필요가 있다. 나의 가장 진솔한 마음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이 내려준 해답이 아닌 스스로에게 확인하여 얻게 되는 해답이 정답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임은 분명하다.

류예진

(사회대 문헌정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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