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정신과에서 검사도 받고 약도 먹는다. 안 그래도 살이 없던 친구의 몸은 비쩍 말라가고 마음뿐 아니라 몸도 안 아픈 곳이 없었을 정도였다. 조그만 동네에서 자라 초, 중, 고 시절을 모두 함께했던 친구. 평소 독서를 좋아했던, 조용히 웃어주는 모습이 예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유독 단체 채팅방에서 말이 없다 싶더니 어느 날 우울증이라고 한다. 포항의 작은 동네서만 자라 대학이라는 넓은 사회가 낯설어 그런 줄만 알았다. 아니었다. 사실은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간 것 자체가 문제였다.

사실 친구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간 것은 아니었다. 유독 독서를 좋아했고, 또래에 비해 월등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그 이유로 어문학 계열 진학에 있어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었다. 기쁘게도 당시 어문학 계열로 유명한 서울 쪽 대학과 지방 외대 모두 합격했고, 주변에서는 당연히 서울 쪽을 가야하지 않느냐는 반응뿐이었다. 결국 친구는 자신의 원래 성적보다 상향지원이었던 대학에 진학했고, ‘외교관 자녀들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게 많은 번역과제가 나오고, 어문학 계열에서 조별과제는 왜 그렇게 많은지. 하루 종일 과제와 공부가 반복되는데도 오르지 않는 성적과 낯선 환경은 친구를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조차도 서울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 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말 그게 친구의 미래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선생님, 부모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간다면 더 좋은 대학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를 반성한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학력, 돈도 많이 주고 안정적인 직장이 곧 행복이 아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인터넷에서 흔히 떠다니는 글귀가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대학생 3년차에 접어든 지금, 남들 다하는 취업에 조금이라도 늦을까 조바심을 내는 나를 보며, 나조차도 내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왔음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다.

친구는 지금 휴학계를 내고 편입을 준비 중이다. 물론 서울 쪽 대학만큼 ‘좋은'곳은 아니지만 본인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고자 한다. 앞으로는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질 않길 기도하며 진심으로, 정말 많이 응원한다.

보편적인 길이 옳은 길이 아니었음에도 어린 시절 우리는 남들처럼 하면 평균은 간다는 말처럼 살아왔다. 그 길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니, 다시 생각해봐라,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와 같은 소리를 들으며 ‘내가 정말 잘못 한 건가’ 스스로를 점검했다. 당신이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며, 그 삶을 찾기 위한 노력들을 더 당연하게,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한솔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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