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여학우에게 ‘화장 안 해도 괜찮다는 선배 말이 저는 기분이 나빴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며칠 전 여성의 옷차림이나 화장 따위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난 많은 여성들이 너무나 촉박한 아침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화장하고 등교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어느 외국에 가면 풀메이크업 한 여성을 길에서 보기 힘들다던가, 한때 이슈였던 노브라 운동 등을 다 같이 얘기했고, 그 와중에 내가 여성들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를 했다.

화장은 꾸미는 도구에 불과하니 화장을 하지 않아도 주변 친구들과 연인의 진심이 변할 리 만무하고, 또 화장이 자기만족의 도구라 할지라도 아침에는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는 대신 화장을 하고, 밤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클렌징을 할 바엔 안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테니 화장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뜻에서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나빴다는 그 여학우의 말을 그 순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괜한 참견을 했나 보다.’하고 생각할 때쯤, 그 여학우는 “선배 말이 호의라는 것은 알겠는데, 남성이 여성에게 민낯을 허락하는 것 같아서 별로였다.”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기분이 많이 나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과를 했지만, 한편으론 남·여 간에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이 느껴졌었다.

지금껏 남성으로 살아왔으니,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나의 시도들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서로의 경험 차이로 인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극을 메울 수 없다고 해서 남·여가 공생해야만 유지되는 사회인데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겪은 이 작은 사건도 그러한 의도에서 나온 내 나름의 노력이었고, 또 덕분에 내가 알 수 없는 여성의 입장 하나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젠더 문제만 나오면, 괜한 공격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눈치만 살피고 침묵을 지키는 사회 분위기가 더 걱정스럽다. 당장 젠더를 주제로 독자기고를 한다고 했을 때도, 남자건 여자건 조심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알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소통의 본질은 오해에 있다고 했다. 오해가 두려웠다면 애초에 소통을 거부했을 것이다. 나는 오해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침묵하면 나와 타자가 가진 오해를 풀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소통은 오해를 딛고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젠더 문제를 두고 성별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작금의 세태도, 서로에게 쌓인 오해를 풀어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한다면 그 해결은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부

(사회대 사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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