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gender)는 사회적인 성(性)을 의미하는 단어다. 생물학적인 신체 특징으로 성을 구분하는 섹스(sex)와 달리 젠더는 개인의 정체성에 따라 구분된다. ‘성정체성에 남성과 여성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남성은 여성만을, 여성은 남성만을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모든 젠더는 평등해야 한다는 것’. ‘젠더시네마 스쿨’은 이를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인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다. 나와 다른 젠더를, 나와 다른 성지향성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우리의 곁에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사회대 352호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이영 감독. 이 감독은 <상암동 월드컵(1999)>, <나이프 스타일(2004)>, <이반 검열(2005)>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 <불온한 당신>의 포스터. ‘바지 씨’인 여성 성소수자 이묵 씨가 생물학적 남성들처럼 면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지난 8일 오후 7시, 본교 사회과학대학(이하 사회대) 352호 소암 시청각실에서 ‘2017 젠더시네마 스쿨(이하 젠더시네마)’의 첫 강연이 진행됐다. 젠더시네마는 ▲대구북구여성회 부설 대구여성영화제 ▲본교 여교수회 ▲교수회 양성평등위원회 ▲사회대 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사회학과 등이 모여 주관한 강연 프로그램이다. 이날 처음 진행된 젠더시네마에서는 영화 <불온한 당신>의 이영 감독이 ‘여성 성소수자 젠더’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50여 명의 참석자들이 352호에 모였다.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참석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노진철 교수(사회대 사회)는 “젠더 감수성에 의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면 사회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알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며 “젠더시네마에 참석한 학생들이 훗날 사회 상황을 바라볼 때 ‘여성은 어떨까?’를 묻게 되길 바란다”고 축사를 전했다. ‘여성영상집단 움’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 감독은 “기존에 영화나 미디어에서 재현된 여성의 모습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수동적이었다”며 “파워풀하고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같은 뜻을 가진 제작자들과 모여서 2001년 여성주의 영화 단체를 만들고 활동 중이다”고 말했다.

이날 이 감독은 <불온한 당신>에 대해 설명하며 여성의 정체성과 소수자성, 소수자 감수성과 혐오, 거대·일상 서사의 관계 등을 함께 말했다. <불온한 당신>은 ‘바지 씨’로 살아온 70대 레즈비언 이묵 씨,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재난 상황 속의 성소수자, 동성애 혐오세력 등을 소재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중 이묵 씨는 1960년대 당시 남성적 지향성을 띤 레즈비언 바지 씨의 삶을 살아온 당사자다. 이 감독은 “당시에는 레즈비언들이 남성적, 여성적 지향성에 따라 서로를 바지 씨와 치마 씨로 구분해 불렀다”며 “현대에는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용어들이 보편화됐지만 당시에는 시대 배경과 상황상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성소수자, 일본인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이야기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성소수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를 보여준다.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일본에 있는 논과 텐의 집으로 찾아갔다는 이 감독은 “대피소는 남성과 여성 혹은 가족 단위로만 나눠지기 때문에 성소수자는 물론이고 트랜스젠더처럼 호르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우선순위로 고려되지도 않는다”며 “지진의 여파가 남은 상황에서도 대피소가 아니라 집에 남기를 선택한 성소수자의 고충과 아울러 재난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또 하나의 주제로 동성에 혐오세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서 그들이 어떤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조명했다”며 “그들의 혐오발언과 반대 시위가 어떤 차별 행위인지, 소수자를 차별하는 구조를 어떻게 구축해나가고 있는지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사회대 ‘So:One’ 학생회장 김기주(심리 13) 씨는 “개인적으로는 전공 수업보다도 더 열심히 들은, 유익하고 많은 것을 배운 강연이었다”며 “본교 학생들이 젠더시네마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예린(행정 15) 씨는 “종종 동성애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보였는데,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다보니 그런 것들이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며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생각해야겠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한편 젠더시네마는 9월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사회대 352호에서 진행된다. 지난 8일 강연 이후 총 세 번의 강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영 감독과

강연 참석자 간의 Q&A

Q. 이묵 씨 세대의 여성 성소수자들은 치마 씨와 바지 씨로 구분했지만 그들의 젠더정체성은 더 다양하지 않았을까?

A. 치마 씨와 바지 씨 세대는 1960~70년대에 2·30대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지금 20대에게는 할머니, 40대에게는 어머니 세대인 연배다.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이었던 질서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젠더정체성 확립에 있어서도 시대적 한계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젠더정체성에 있어 사람마다 자신만의 특성을 갖고 있지만, 당시의 치마 씨와 바지 씨들에게는 ‘치마’와 ‘바지’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위계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Q.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퀴어 영화를 만들며 감독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나?

A. 20대 때부터 내 외모에 관해 “남자냐, 여자냐?”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2005, 2007년에 10대 레즈비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미디어와 인터뷰를 하고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개인적으로 많이 공격받지는 않았다. 다만 <불온한 당신>을 촬영하면서 공공장소에서 진행되는 동성애 반대 집회를 취재할 때의 일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내가 속한 집단과 내 친구들을 거짓말로 매도하며 왜곡된 사실을 유포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서도 막지 못하고 가만히 촬영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영화는 기록이고 나는 기록을 통해 표현하는 사람이다. 성소수자들에게는 이런 기록 자체가 힘이 되기 때문에 참고 촬영할 수는 있었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Q. <불온한 당신>에서는 혐오세력을 통해 성소수자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구성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A. 공공장소에서 ‘혐오’를 외치는 사람들과 개인의 삶이 어떤 연관성을 가질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예를 들면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는 자리에 혐오세력들이 들어와 “‘성지향성과 성정체성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동성애를 유포시키는 행위”라고 말하며 헌장 선언을 반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헌장이 사실상 선포되지 못했다. 그저 선언만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보호하는 것을 죄다 막고 있는 거다. 차별금지법도 그런 이유로 현재까지 난항을 겪고 있지 않나. 성소수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나 장치가 거의 없다. 우리가 혐오와 폭력에 노출돼있을 때, 차별로 인해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혐오세력의 주장에 일부 정치인들이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현재 개헌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여러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서 ‘성평등’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혐오세력은 “양성평등으로 해야지, 성평등이라고 하면 성소수자들을 옹호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확산된다”라고 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것처럼 시민과 비시민을 나누는 기준이 더 늘어날 것이란 이야기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영화에 담게 됐다.

Q. 여성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등 소외된 여성들을 많이 다뤘는데, 앞으로 어떤 여성들의 삶을 다룰 계획인지?

A. 여성영상집단 움에서는 여성 노동자 중 몇 십 년 동안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바지 씨들을 처음 취재하던 2008년에는 70~80대 사람들은 대다수 은퇴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바지 씨에게 초점을 맞춰 촬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이 100세 시대가 왔다. 최근에는 70~80세가 돼서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자식들이 있는 경우도 있고… 이들의 얘기도 빨리 만나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많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젠더시네마 일정

9/15 <최근 한국영화에서의 새론-소녀> 강연자 : ‘여/성 이론’ 편집위원 심혜경

9/22 <영화관객의 여성화와 여성혐오> 강연자 : 영화평론가 황미요조

9/29 <페미니즘 리부트 :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 강연자 : 문화평론가 손희정

*9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사회대 소암 시청각실 (352호)

*수강료 : 전체 수강시 1만 원, 1강좌 5천 원

*문의 : 053-311-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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