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엔 ‘아집’이 있어.

고2 때 국어선생님이 제 글을 읽고는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얼핏 부정적인 의미의 고집을 뜻하는 것 같았지만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니어서 뜻을 찾아봤습니다. 아집.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

그때만 해도 백일장에서 장원도 차지했고 글 좀 꽤나 쓴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높아진 콧대를 단번에 꺾어버리는 말씀이셨죠. 하필 그 선생님이 수업하신 방언학이 무척 재미있어서 국어국문학과를 가려고 했거든요.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놀라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제 글을 그렇게 평가해준 것이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때 이후로 저는 제 글 속의 ‘아집’이 무엇인지 수십 번도 더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저 스스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죠. 내내 고심하다 어느새 그 아집인지 뭔지 깨버려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글 또한 자연히 그러지 않을까 하고요.

대학신문사에 들어왔습니다. 생각보다도 대학은 별의별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고, 고작 열 몇 해 자란 머리로는 알 수 없었던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을 알려면 깨지든 휘어지든 해야 될 것 같더군요. 기사 내는 건 또 왜 이렇게 힘든지. 아무도 학보사에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좋은 기사든 나쁜 기사든 하나 쓰고 나면 꼭 누군가가 제 기사가 어땠다고 한 마디씩 해주는 것입니다. 나름 머리 쥐어뜯어 가며 열심히 쓴 기산데 ‘이 기사는 이렇게 가면 안 되지’라고 들으면 슬쩍 기분이 나빠지는 한편, 그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릅니다. 기자 2년 차, 3년 차가 되니 그때 들은 한 단어가 갈수록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어쩌면, 저란 존재는 평생 아집에 갇혀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벗어나려고 평생 깨지고 부딪쳐야 함을 배운 것이 열여덟의 저보다 성장한 점이겠죠.

경북대신문이 9월 11일 자로 지령 1600호를 맞이했습니다. 특집기획을 통해 적지 않은 독자 분들이 지난 경북대신문을 평가해주셨습니다. 그 모든 글을 읽으며 열여덟 살 때처럼 새로운 충격을 느꼈습니다. ‘경대생의 일주일을 함께하는 신문’이라는 애정 어린 평도 있었고, ‘보는 사람만 보는 것 같다’는 촌철살인과 같은 평도 있었습니다. 모든 한 마디 한 마디가 묵직합니다. 어떻게 하면 본지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올바른 대학언론으로서 학내 구성원의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길 바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서, 신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제대로 지키길 바란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아집과 안주라는 작은 방에서 벗어나 매 호 독자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자님. 지금 이 1600호는 당신이 들고 계시기에 가치 있습니다.

김서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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