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년부터 적용될 교육과정 개편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학생들도, 이 작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학생들도 많지 않은 듯하다. 대학 본부에서 학생들에게 거의 홍보를 하지 않은 탓도 있고, 학생들 스스로도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만큼 여유가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정 개편은 학생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개편안은 교양교육을 축소하고 전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교양교육의 의미를 지나치게 간과한 결정이다. 현대적 의미의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은 ‘자유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을 가리킨다. 이러한 교양교육은 국내외 대학들의 중요한 교육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버드대학의 경우에는 2007년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대학 교육의 목표를 아예 ‘교양교육을 실시하는 데 있다’고 선언했을 정도이다.

하버드대학은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교양교육의 세부 목표를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밑에,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이 목표의 핵심은 학생들이 기존의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데 있다. 이는 전공 지식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버드대학이 교양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이유로 경북대학교 역시 ‘2008학년도 교육과정 개편안’에서 교양교육의 목표로 “첫째, 전반적인 학문 탐구에 기초가 되는 표현능력(의사소통능력)과 사유능력(논리력, 창의력, 비판력)을 함양하고, 둘째, 다양한 학문 영역 간의 소통을 위한 학제적 사고와 이해 능력을 함양하고, 인간과 세계, 사실과 가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한 인성 함양과 바람직한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 <수학>, <영어> 등의 교양 교과목 운영을 총괄하도록 하고, 해당 교과목들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하는 방향이었다. 21세기가 정보화의 시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군다나 4차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얼마 안 가 현재 직업의 6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전공 지식들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그 속도를 쫓아가는 데 급급하다 보면 삶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극을 체험하지 않으려면 기존의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글쓰기>와 같은 교과목은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반드시 이수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주제 선정, 내용 생성, 글의 구성, 문장 쓰기, 맞춤법 등을 교육한다. 이것들은 단순히 ‘문장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수준의 교육과정이 아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자기 관점에서 조직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의사소통의 기초 소양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 전문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능력, 고도의 전문 지식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 등을 함양하기 어렵다. 서울대와 부산대를 포함한 전국 주요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교과목, 특히 <기초 글쓰기>를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기초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현재의 개편안은 <글쓰기>를 포함한 교양 교과목들을 축소시키고 전공교육을 강화하려고 한다. 교양 강좌의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 그리고 교육부의 평가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등이 대학 본부가 내세우는 근거이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하고 학생들을 교육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교육의 목표가 현실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복종하는 법이 아니라 자유롭게 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현재의 개편안은 이와 같은 대학 교육의 근본 목표를 잊고 있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국내외 주요 대학들의 움직임과도 동떨어져 있다. 현재의 개편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결국 그 피해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모두들 명심하기 바란다. 

염철 초빙교수

(기초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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