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하여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지난 8월 30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는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로써 상고심 대법원에서 다시 한 번 심리될 예정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의 소위 ‘셀프감금사건’에서 촉발되었다. 2012년 12월 11일, 강기정, 문병호, 이종걸 등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국정원 댓글 제보를 받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 찾아갔다. 방문을 열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김하영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관계자들을 감금·주거침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하영에 대한 강압적 감금인지, 셀프감금인지가 쟁점이었다. 2016년 7월 1일, 1심법원은 의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마찬가지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 관련 재판이 진행되면서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으로 악성댓글을 단 혐의로 국정원 직원 유모 씨에게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으며,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내부고발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이 댓글조작을 통해 2012년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여 국가기관인 국정원을 국내정치공작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혐의로 그는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고, 그의 유죄 여부도 재판부에 따라 달리 판단되었다. 그는 1심에서는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2심에서는 법정 구속되었다. 상고심인 대법원은 국가정보원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하였으나 공직선거법 위반은 최종 판단을 보류하고 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하였다. 그는 그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달 30일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법은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을 인정하고 그를 법정 구속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사법정의 실현’으로 평가하고, 아예 대선 개입의 몸통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국정원 적폐청산을 이유로 한 문재인 정부의 과거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과연 이 판결은 ‘정치보복’(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이나 ‘전 정부에 대한 보복성 적폐의 일환’(정우택 원내대표)일까? 

‘정치 관여 금지’에 관한 국가정보원법 제9조는 “원장·차장과 그 밖의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1항)고 규정하고 있다. 동조 2항에서는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결성 또는 가입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비롯한 여러 행위를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로 보고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 규정을 들어 국정원의 사이버 여론조작 활동은 명백한 선거개입이라고 보았다. 

현재 국정원이 사용하고 있는 원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소리 없는 헌신’이다. 이 원훈과는 상반되게 국정원의 수장을 맡았던 원 전 원장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의 이익을 위해 국가조직을 사용하여 대선개입이라는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그렇게 하여 그와 국정원이 얻은 이익은 자신의 법정 구속과 조직의 붕괴였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위협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기는커녕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다. 

국가의 근본을 뒤흔든 그의 행위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에 대해 일부 정치인들은 ‘정치보복’ 운운하고 있다.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만일 다음 대선에서 현 정부가 국정원을 이용하여 또다시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지금처럼 똑같은 말을 하면서 대선 결과에 승복해야 하고, 그것이 참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할 것인가? 

원 전 원장은 재상고할 뜻을 밝히고 있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검찰이 제출한 파일을 증거불충분하다며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제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은 다시 대법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파기환송심을 맡았던 대법관 13명 중 10명이 남아 있는 대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사법정의의 실현이 대법원 손에 달려 있다.

채형복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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