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서나 북한에 대한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뉴스와 라디오를 통해서, 정자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에서, 스마트폰 속 인터넷 기사에서. 어쩌면 북한은 우리의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곳을 어떻게 보는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해야하는지의 의견조차 사람마다 제각각인 북한은 참 가깝고도 먼 곳이다.

나는 한 때 그곳의 그런 이야기들이 참 지겹게 느껴졌다. 독일을 보면 답이 나오는데 통일은 무슨,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곳의 굶주리는 사람들과 헐벗은 아이들에 대한 어렴풋한 동정심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학 때 어떤 책 한 권을 읽고 중국을 다녀오며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그 책은 ‘사랑주의’에 대한 책이었다. 사랑주의란 사상과 종교, 이념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을 베푸는 것을 뜻한다. 중국을 여행하는 7일 동안, 나는 그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

단동의 압록강에서 배를 탔는데 북한 배가 와서 북한 물건을 팔았다. 북한 사람이 어떻게 한국 사람이 타고 있는 배에 물건을 팔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북한을 굳이 떠날 필요 없는 고위간부나 군인의 가족이란다. 새까만 피부에 허름한 옷차림.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이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니. 그럼 더 하위층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간다는 건지 그곳은 생각보다 참담했다. 용정에 갔을 때는 산 위의 정자인 일송정에 올랐다. 일송정에 오르니 가장 깔끔하고 하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은 포로수용소였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탈북하는데, 만약 중국 군인들에게 잡히면 북한에 가기 전까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수용소가 다 차면 그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북한으로 가는 차를 타게 된다. 북송당해 죽을 것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포로수용소를 보면서, 똑같은 길을 똑같은 버스로 달려가지만 누군가에게는 여행하는 즐거운 길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길이 된다는 것을 느끼며 중국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서 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 즉 나의 행복의 기준은 먹고 사는 수준과 비례했다. 내 시각은 너무나 편협했고 내가 그들보다 배불리 먹고 잘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므로 나는 그들을 불쌍하게 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족함 없이 사는 것이 축복처럼 보이지만, 부족하지 않은 만큼 더 베풀라는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북한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열게 되었다. 북한의 주체사상과 정치체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을 잊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 작게나마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 함께 할 수 있는 날을 바라보며.

박시온

(인문대 국어국문 17)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