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불평과 공적 문제의 사이는 다수의 목소리가 될 수 있느냐, 한쪽의 명확한 문제가 드러날 수 있느냐 등 여러 상황적 요인과 사회적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히 내 삶에서 불편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문제였지만 상대의 입장과 근거에 따라 제3자에게 작은 불평에 불과할 수도, 꼭 해결돼야 할 문제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본교 생활관 퇴관일이었던 지난달 19일. 단 하루였던 퇴관일에서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던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였다. 퇴관일이 월요일이었기에 퇴관하는 관생들이 받을 수 있는 외부인의 도움은 주말보다 한정적이었을 뿐더러,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재정(구관) 생활관의 경우 짐을 옮길 때 외부인의 도움이 더욱 절실했다. 외부인 출입 시간조차 누군가를 동원하기에 애매한 평일 점심시간. 불편을 겪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다만 “짐을 ‘옮기는’ 데만 두 시간이 모자라는가?”, “이전부터 퇴관일을 공고해왔고 개인이 사전에 준비하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전 퇴관일 발표로 난감했을 관생들도 돌아봐주길 바란다. 제기된 문제에 대해 반박할 만한 여지가 있음에도 문제로 볼 수 있는가, 개인의 불평으로만 치부된 것인가. 문제에 대한 재반박에도 위와 같은 경우 개인의 부지런함에 대한 지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원칙대로 진행한 일이었으니 행정 처리에 있어 어긋남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원래 짐을 옮기는 날짜와 시간이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편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반박에 재반박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소통의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고질적인 구조는 어떻게 해결돼야 할 것인가. 행정 처리에 있어 약간의 배려만 있어도 손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외부인 출입을 허용한 것도 관생들의 편의를 봐준 것이지만 행정 처리의 수월함을 위한 편의와, 상대의 입장을 좀 더 고려해 제공하는 더 높은 수준의 편의가 있지 않은가. 행정 처리에 있어 원칙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약간의 융통성을 고려할 수는 없었는지, 예상되는 불편들을 개선하기 위해 소통의 행정을 보여줄 수는 없었는지. 이 문제적 구조는 불편을 겪고 있는 쪽에서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잊힐 것이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인식돼 온 구조는 언제가 다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물론 과도한 불만을 표출하는 학생들도 개선돼야 하겠지만, 비단 퇴관일 뿐만 아닌 매년 관생들 사이에 불거지는 다수의 불편들을 보며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이한솔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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