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실사회에서 고민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다.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는 구성원 모두가 협력하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불신해서 모두에게 훨씬 나쁜 대안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구성원 각자가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경우, 몇 가지 전제조건하에서는 협력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교통질서가 준수되는 도심환경은 모두가 원한다. 하지만 야간 도심가로에는 수많은 광고지가 흩뿌려져 있고 빨간 신호등인데도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보행자와 녹색 불에서도 적당히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자동차를 어렵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여름철 산과 계곡을 오염시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산객들의 무질서 행태도 유사하다. 모두가 공공질서를 지키면 간단히 모두의 행복수치가 높아질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며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이다. 

집합적 행동의 문제를 풀고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을 구성요소로 하는 사회적 자본의 역할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 집합적 행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우리의 교육, 아동복지, 경제성장, 건강과 행복,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사회적 자본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진척되고 있다.

흔히 사회적 자본은 두 가지의 채널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법이나 공적 제도를 통해서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대개 자발적 결사체를 통해서 현실화되고, 법이나 공적 제도는 민주 국가에서 정부의 주도적 노력이 기대되는 영역이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자로서 법적, 제도적 측면에 대한 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연구서를 찾던 중 최근 김윤상 교수의 「이상사회를 찾아서 - 좌도우기(左道右器)의 길」 (2017, 경북대학교 출판부)이라는 저서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김윤상 교수가 ‘지대조세제’에 대한 30여 년의 오랜 연구결과를 토대로 정의로우면서도 실천 가능한 이상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를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제시한 것이다. ‘지대조세제’는 그 논리의 정치성(精緻性)에도 불구하고 현실 영역에서 그렇게 인기를 얻지 못한 특이한 제도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제도설계를 제도 자체의 정치성에 대한 강조보다 관련 제도에 대한 장점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을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으로 보였다.

고복지, 신자유, 나중도, 이상향 씨 등의 가상의 인물들을 설정하여 대화식으로 논의를 이끌어 간 점, 관련 주제에 대한 대표적인 사상가들인 토마스 모어, 허버트 스펜서, 존 롤스 등의 대표 저작물을 통한 핵심 원칙의 정리, 그리고 저자 자신의 학자로서의 사색의 여정 등을 소개한 것은 딱딱할 수밖에 없는 ‘지대조세제’ 논의를 독자들에게 연결시켜주기 위한 링크였다. 이 책은 전체 4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이 핵심인데, 현실에서 ‘좋은 사회제도’가 합의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성향과 계층의 인간을 등장시켜 논의한다. 제2장은 우리 불행의 가장 핵심적이고 근원적인 사유로 특권, 그 중에서도 토지특권을 들고 왜 ‘지대조세제’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상술한다. 제3장은 왜 본서의 제목이 ‘이상사회를 찾아서’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역으로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관련 대표적 사상가들인 토마스 모어, 허버트 스펜서, 존 롤스 등을 소개하고 그들의 대표 저작물 소개와 관련 원칙들을 정리했다. 마무리 장인 제4장에서는 저자의 학자적 이력을 나의 사회문제 답사기라는 주제로 소개했다. 

제4장의 논의를 보면 왜 저자가 본서의 부제로 ‘좌도우기(左道右器)’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가 분명해진다. 권력과 불평등 그리고 편견을 극복하고 기존의 제도와 다른 ‘좋은 제도’를 이식하고 정착시켜 가기 위해서는,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실에서 실천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대조세제’와 같이 한 국가의 일부분에서 실험적 시행이 사실상 여의치 않은 제도는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해당 국민 거의 대다수가 그 제도의 유용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소위 선진국에서 ‘지대조세제’를 적용하고 있고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진 경우이다.

거의 대부분의 토지가 국유인 싱가포르의 경우에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보면, ‘지대조세제’의 실제 운용 디테일은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일을 결정하는 방향은 진보적 관점에서 그리고 일을 추진해가는 것은 보수적 관점에서 풀어 가면 어떨까 하는 좌도우기(左道右器)론을 제시했다. ‘좌도우기(左道右器)’론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본말(本末)’론을 떠올리게 한다. 다산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 핵심인 유학사회에서 수기(本)에 치우치는 경향을 경계하고 치인(末)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여기서 ‘본말(本末)’은 ‘도기(道器)’로 치환할 수 있으며, 형이상학적인 도(道)와 형이하학적인 기(器)의 보완적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도(道)가 결여된 기(器)는 맹목일 수 있고, 기(器)가 부실한 도(道)는 허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현재의 사회적 상황이 집합적 행동을 제대로 해결 못할 정도로 실망스럽다하더라도, 법적 그리고 공적 제도만 잘 정비하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해당 사회의 사회적 자본 수준을 제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집합적 행동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고 정부의 문제해결역량 또한 함께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다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다양한 성향의 인간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 사이에서도 좋은 사회제도에 합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이 책의 논지는 관련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연들인 이상향, 나중도, 신자유, 고복지 씨들의 매너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면 일독을 권한다.

박종화 교수(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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