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2)

- 지난 1594호에 이어

여름이 됐다. 저마다 하복을 입고 에어컨을 튼다. 너무나도 덥다. 6월 모의고사는 다가온다. 수능도 다가온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밤에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밤 다른 장소에서 그것을 하고 있을 때면 야릇한 기분이 든다. 오늘 밤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X발!” 

이럴 수는 없다. 별들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우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별들이 사라질 수 있나.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순간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분노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순간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이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다. 별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안 보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상하리만치 밤하늘에 구름이 없었다. 오늘은 구름이 낀 것이다.

그날부터였다. 하루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내일이라는 희망을 목발처럼 짚고서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장마가 왔다. 지루한 장마였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다시 그것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면 그만 아니냐고?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100의 행복에서 평생을 살아왔어도, 언젠가 110의 행복을 알게 되면 100의 행복은 불행이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나 또한 인간이다.

그리고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장마가 끝났는데도 별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별은 자신의 빛나는 자태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한 번도. 매일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보지만, 별은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걷히지 않는다.

6, 9월 모의고사 점수는 마치 연착륙하는 비행기처럼 떨어졌다. 이제는 모두가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 나는 보잘것없는 놈이 되어버렸다. 추석 때의 친척들 앞에서 쩔쩔매는 부모님의 모습은 이제 내가 적응해야 할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직도 나를 믿고 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면서 다시 마음먹고 하면 언제든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말이다. 결국엔 성적이다. 내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는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어머니의 관심사는 내가 아니라 내 성적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성적을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 성적을 통해 남들로부터 느끼는 우월감과 동경을 사랑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 추락했다면, 분명 내 자리를 대신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1등은 한 명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제 내가 수능을 기다리는 이유는 오직 이것뿐이다.

언어시간. 내 시선은 여전히 창 밖 하늘이다. 다행히도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다. 나는 탐구 과목 시험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하늘을 바라봤다. 태양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혼자만 빛나자고 수많은 아름다운 다른 별들을 모두 가려버린다. 저만큼 이기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

역시나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다들 친구와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는 혼자다. 수능시험장에서 집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걸어서 가면 한 시간은 가야 하지만 상관없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오늘 밤은 어쩌면 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를 걷게 만들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드디어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든다. 그리고… 누군가가 달려와 어깨동무를 한다.

“얌마! 너 또 하늘 보냐? 이제 별은 없어, 멍청아”

그해, 녀석은 서울대에 갔다.

                                 -完

옥동진

(인문대 노어노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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