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으렴” 

오늘도 어머니의 목소리에 잠을 깬다. 잠을 깨는 것이 너무 싫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이제는 날 수 없다. 아침밥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수건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문득 이 패턴이 지난 11년간 학습된 것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대학만 가면 끝이라고?

모의고사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담임선생님께서 자율 학습 시간에 나를 부른다. 그리고 지극히 예상 가능한 말들을 한다. 요즘 힘든 일이 있느냐, 학교는 다닐 만하냐, 어려운 점은 없느냐. 빙빙 돌려서 말하지만, 본질은 결국 ‘성적을 올리라’는 것이다. 저 사람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십 년째 같은 말을 수백 명에게 반복해왔겠지.

사실 나는 이 학교의 기대주다. 우리 학교는 농어촌 전형 학교다. 일 년에 딱 한 명만 서울대에 지원할 수 있다. 가장 모범적인 학생 한 명만이 교장의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모범적인 학생의 척도는 수능 성적이다. 

나는 또 우리 집의 기대주다. 가족들은 내가 서울대에 가서 행복하기를 원한다. 아니 그들은 내가 서울대에 가서 나의 ‘서울대’ 이야기를 떠벌리기를 원한다. 그 행위를 통해 그들은 묘한 우월감을 느끼리라. 내가 서울대에 가는 것은 사실 자신들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명문대에 가는 것은 순전히 내 능력이고 내 몫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은 없다. 나에게는 전혀 해가 될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얌마, 넌 왜 땅만 보고 걷냐?” 

친구 놈이 뒤에서 달려와 어깨동무를 한다. 중학교 때는 이놈도 공부를 썩 잘했다. 그래서 같이 어울리기도 했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수업을 따라오지를 못한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죽도록 열심히는 하는데 머리가 안 따라 준단다. 이제 이 녀석은 내 삶에서 작은 부분조차 차지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멍청한 녀석은 필요 없다. 

“뭔 상관이야”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다시 땅을 본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어머니가 사 준 흰색 나이키 운동화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난다. 녀석은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 신발을 5년째 신고 있다. 신발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신을 모양인가 보다.

“요즘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또 무슨 상관이람. 너는 내 인생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고…

“뭐... 수능도 다가오고 하니까” 

안타깝게도 이 녀석의 집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이십 분 거리. 앞으로 적어도 십오 분은 더 같이 가야 한다. 요 몇 년간 혼자 가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지금의 상황이 어색하기만 하다. 

“짜식, 하늘도 좀 올려다보고 살아라. 난 할머니 주무시기 전에 들어가야 해서 먼저 갈게!” 

드디어 어깨동무가 풀렸다. 그리곤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더니 앞으로 달려 가버린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녀석이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지만 반갑지 않았다. 요즘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가식처럼 보인다. 오로지 내가 성공했을 때 어떻게든 한 자리 얻어 보려는, 그런 흑심 말이다. 그들의 모든 친절과 칭찬과 웃음과 걱정. 그 모든 것.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반갑지 않았다.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너무나도 아름답다. 밤하늘에 박힌 별들이 흡사 다이아몬드 같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별자리가 떠오르려는 것을 애써 막는다. 그냥 별 그 자체를 보고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그 어떤 학문적 지식이나 이야기가 없이, 발가벗은 상태에서 순수한 내 눈으로 순수한 별을 보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왜 지금껏 보지 못했던가? 별이 너무나도 많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남모르는 취미를 가지게 됐다. 매일 밤 집에 가는 길, 각기 다른 곳에서 멈춰서 별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취미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의 습관이 됐다. 그리고 어느덧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이제 그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머리를 감고, 교복을 입는 것처럼 내 삶의 패턴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나의 삶이 됐다. 이제 나는 그것을 위해서 살아간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보다 황홀한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나에게 오르가즘, 그 이상의 쾌락을 준다.

▶다음호에 이어

옥동진

(인문대 노어노문 12)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