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어두운 이들은 본인이 타인들로부터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 끝없이 이해와 관심을 갈구하곤 하는데, 관계라는 것은 상호적이라서 그것이 어떤 경우로든 일방적이 되어버리면 오래 지속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특수한 경우를 위하여 거의 완전히 일방적인 관계인 상담이 존재하는 것이다.그런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본인이 ‘현재’ 불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데,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에 녹록치 않을 것이다. 불우했던 과거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본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억울해서이고 더 중요한 둘째, ‘그동안 힘들어해온 자신이 초라해질까봐’이다. 과거를 극복하려면 그것을 소위 ‘별 거 아닌(극복할 수 있는) 경험’으로 치부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괴로웠던 자신의 모습을 갑자기 배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결코 ‘별 거 아닌 경험’이 아닐 것이다. 이를 타인이 함부로 정의해 버린다면 정말 화가 날 일임이 분명하다. 허나 그 주체가 스스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얼마 전, 한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본적이 있다. 지뢰를 밟아 다리 한쪽을 잃은 젊은 군인의 그것이었는데, 20대 초반에 다리를 잃은 그는 놀랍게도 의족에 의지하여 선 채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고 있었다. 심지어 그 밑의 문구는 ‘빠밤 섰다 걷는다!’였다. 나는 매우 놀라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리를 잃는다면 저런 미소를 보일 수 있을까?’, ‘저런 말을 하며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말이다. 겉으로는 저렇게 웃어도 그는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들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운동도 못하고 많은 편견들과 싸워야 할 것이며, 살면서 누릴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함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도 말도 안되게 그가 밝게 웃는 모습으로 브이를 그리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반대로 그가 슬픔에 빠진 채로 우울증에 걸려 두문불출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진 않겠지만, 그를 응원하는 이들은 분명 현저히 적었을 것이고 그들 대다수도 어쩌면 연민 혹은 동정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두서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은 결국 본인이 멋진 사람이 될지, 불쌍한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명대사 “웃어라 세상이 모두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묘한 이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은 본인을 대하는 태도로 타인도 대하고, 스스로 가치를 매기는 대로 타인도 그렇게 봐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자기분석만 계속하던 나에게 이 사실을 깨치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조혜성

(사회대 심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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