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에는 ‘지도교수 상담 8회 이상’이라는 졸업요건이 존재한다. 이 제도는 학생들이 지도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학업 진행에 있어서의 도움이나 졸업 후 진로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 하에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이 상담을 단순한 졸업요건의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한 학기 한 번 장학금 신청서와 함께 방문함으로써 그 횟수를 채우고자 한다. 물론 그 본래의 목적에 맞도록 교수와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도 있고, 진지하게 응해주는 교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그것이 무료하고 어려운 시간이며, 대부분의 교수들에겐 귀찮은 것이고 개인 시간을 뺏는 것일 뿐이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상담하러 가면 무심하게 사인만 해주진 않더냐고. 아마 대부분이 그렇다고 응할 것이다. 과연 이렇게 시행되고 있는 지도교수 상담제는 유용한 제도인가에 대해 이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나는 여기서 ‘무심하게 사인만 해주는’교수들을 비판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의 맹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개개인이 생각하는 것은 같을 수 없다. 누군가에겐 학문을 연구하고 많은 후학을 양성한 교수들에게서 조언을 얻음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교수보단 사회에 먼저 진출한 선배, 혹은 친척이나 가족 등이 더 중요한 조언가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인터넷 잘 되는 우리나라에선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정보든 얻어낼 수 있을 터, 무엇이 걱정인가. 교수에게서 조언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은 지도교수 상담제가 없더라도 당연히 그분들을 찾아가 배움을 얻을 것이고, 다른 조언가나 정보가 유용하다면 상담제가 있더라도 교수보단 다른 정보를 더 신뢰할 것이다. 비단 학생들에게만 중점을 두고 생각할 것이 아닌 것이, 분명 교수들 중에는 학문 연구에 힘을 쏟는 분도 많다. 그분들에게는 상담제로 인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고역일지도 모른다. 한시라도 더 많은 연구를, 혹은 수업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열 명에 가까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학생과 교수의 유대감 형성이다. 마치 중고교 교사와 학생 같은 관계라면, 이 상담제는 충분히 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상담제를 처음 만든 분들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대학이고, 결국엔 모두가 각자 바쁘게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곳에 그런 유대감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유대감이 없는 이상, 이 제도는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 목적은 사라지고, 그 주체가 되는 서로에겐 귀찮음과 어려움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실효성 없는 지도교수 상담제, 이제 그 필요성에 대해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윤상현(사회대 지리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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