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바르셀로나를 여행했다. 흔히 ‘바르셀로나’라고 하면 가우디의 건축물이나 세계적인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그것들도 휼륭했지만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것은 그와 다른 것이었다.‘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내 뇌리에 박힌 것은 청년들의 ‘열정’이었다. 그것들은 몇 가지 이미지들로 남아있다. 바르셀로나의 첫 이미지는 청년 반항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그래피티였다. 벽, 셔터, 대문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도시 전체를 마치 도화지처럼 쓰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어보였다. 그중 경악스러웠던 것은 지하철 선로를 따라 그린 것이었다. ‘여기까지 나의 흔적을 남긴다!’고 외치는 듯한 그 패기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면서 경외심까지 들었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 앞에서 보드를 타던 청년 무리였다.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그곳 앞에서 그들만의 놀이와 어울림을 즐기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쾌감을 느끼게 해줬다. 스페인 청년들의 이런 열정은 문화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열정은 위기의 상황에서 정치 판도까지 바꿔놨다. 스페인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한때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어갔고 살인적인 주거비까지 더해지면서 청년들은 기성 정치에 분노를 터뜨렸다. 2011년 5월 15일에 시작된 이 시위는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으로 불리며 실업과 빈부격차, 부패, 공공서비스 삭감 등의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청년들의 분노는 운동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시위를 조직화한 청년 세력은 2014년 정당으로 변모했다. 그들의 정당명은 ‘Podemos(포데모스)’로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정치적 성장은 폭발적이었다. 창당 4개월 만에 유럽 의회에서 5석을 차지했고 2015년 12월 스페인 총선에서는 69석(21% 득표)을 얻어 전통적인 양당 체계를 무너뜨리고 3당 체제를 구축했다. 포데모스는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는 모임인 ‘써클’을 기초 단위로 해 써클끼리의 온라인 네트워크로 결사체가 구성되는 형태다. 이런 조직의 형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현실 정치에서 구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도 그 변환점에 서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는 취업난의 현실에서 우리 청년들은 이번 탄핵 정국을 이끄는 주동자였다. 이화여대에서의 시위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촛불 집회에서도 그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탄핵을 이끌어온 분노와 열정으로 우리를 위한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마저도 경제 위기는 지속되고 있고 작년 6월 실시된 총선에서 포데모스는 제2당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여전히 3당에 머물렀다. 한 걸음씩 나아가자. 당장 다가오는 장미 대선에 표를 행사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말이다. 그리고 자, 이제 말하자 ‘우리도 할 수 있다!’라고.

김민호 취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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