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한패이며 모두 다 사람을 잡아먹는 자들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개는 나를 노려보고, 나의 형은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한다.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주인공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식인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광인(狂人)이다.1911년, 민주주의 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고 더 이상 황제는 없다. 그러나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들은 여전히 봉건적 관습을 고수하고, 새로운 시대에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루쉰은 이러한 사람들을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식인(食人)으로 묘사했다. 식인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잡아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부류는 “잡아먹어서는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여전히 잡아먹으려” 한다. 그들이 먹는 것은 오래되고 쓸모없는 것이다. 누구는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관습대로 행하고, 누구는 잘못된 것을 아는데도 탐욕을 부린다. 과연 미친 건 광인인가, 식인인가? 아니, 누가 진짜 광인인가?이 시대는 식인들의 시대다. 그것도 어느 부류에 속하지 않는,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는 데다 탐욕을 부리는 식인들로 넘쳐난다. 1970년대의 권위와 복종이라는 죽은 고기를 먹고 사는 식인들은 이 시대의 정치경제문화 등을 가릴 것 없이 삼켜 폐단을 쌓았다. 2017년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식인들은 100여 년 전 루쉰 시대의 것과 비교할 데 없이 더 악독하다. 그러나 오늘의 많은 ‘나’들은 이제 식인들의 시대를 끊어내야 함을 안다.“당신들은 고칠 수 있어, 진심으로 고치라구! 앞으로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은 세상에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걸 알아야지.”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동안 누군가는 혼자 촛불을 들고, 누군가는 함께 모여, 아이는 부모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왔다. 더 이상 1970년대에 멈춘 식인의 시대로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식인들이 뜯어먹었던 것이 박정희 시대의 유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혈이었다는 것을, 현 시대의 미래였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사람을 먹은 적이 없는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나’의 일기는 그렇게 끝난다.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이 식인들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자는 외침이다. 현 시대의 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지금의 생혈이 뜯기는 아픔을 참았던 건 적어도 미래는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옆에서 엉터리 리포트라도 내면 B학점을 받으니, 이대로는 아이들을 위한 미래는커녕 내 미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들은 개는 나를 노려보고, 나의 형은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하는 것이 내가 미쳤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촛불을 들었고, 결코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끔찍한 식인들의 시대를 알기에, 목소리를 내고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김서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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