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의 이해>는 배고픈 수업이다. 수업이 점심시간에 걸쳐있어 유독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토론이 진행되는 세 시간 동안 머리를 쉼 없이 돌리니 그에 따른 칼로리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수업 중에는 배가 고파질 정도로 생각과 논리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내야 했다. 토론은 쉴 새 없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핑퐁 같았다. 그 과정에서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왜?”라는 건전한 의심을 품게 되었고, 논리는 더욱 확장되고 깊어졌다. <여성학의 이해>는 매주 두 가지의 글쓰기 과제가 있다. 토론에서 나왔던 주제들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적는 ‘생각 키우기’와 책이나 신문자료를 읽은 후 감상을 적는 ‘독서노트’이다. 나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일주일 내내 생각 키우기에 쓸 글감을 찾아다녔다. 그러다보니 항상 젠더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할 만한 사설이나 기사 자료는 북마크를 하고, 페미니즘 도서를 읽다가 좋은 구절이 나오면 메모장에 옮겨 적는 습관도 생겼다.항상 젠더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다보니 젠더 감수성이 지나치게 예민해졌고 여성차별에 대한 글을 읽기만 해도 눈물이 흐를 만큼 정신적 피로를 겪기도 했다. ‘생각 키우기’로 얻은 이런 부작용들을 역설적이게도 다시 ‘생각 키우기’를 통해 치유를 받았다. 젠더를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할 때나 일상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발견할 때면 생각 키우기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마음을 털어놓듯이 생각 키우기에 억울한 마음을 풀어내며 위안을 받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몇몇 학우의 인상적인 글을 읽어주실 때가 있는데, 다른 학우들의 출중한 말과 글을 접하면서 나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왜 난 저렇게 쓰지 못 할까’하는 열등감은 ‘나도 저렇게 논리적으로 말하고 쓰고 싶다’는 의지로 발전했다. 만약 자극과 동기부여가 없었더라면, 나는 내 글쓰기 실력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배부른 돼지로 지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글쓰기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입시 준비를 위해 논술 학원을 다니면서 글 쓰는 속도가 느렸던 나는 글을 적을 때마다 분량 때문에 압박을 느꼈다. 여성학의 이해 수업을 통해 규칙적으로 많은 글을 썼지만, 여전히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마지막 수업시간에 한 학기 동안의 생각 키우기, 독서노트, 조모임 회의록을 모아 만든 나만의 자료집은 이 괴로움을 용기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전공서적과 맞먹을 만한 자료집의 두께가 나에게 “네가 이만큼이나 썼다, 이 정도 분량쯤 별 것 아니다, 고생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주린 배를 채우라는 선생님의 배려였을까, 우리에게 일대일로 만나서 밥을 먹으라고 제안하셨다. 나는 10명의 학우와 밥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 만난 사이에서 흔히 겪는 어색함이 없었다. 우리에게 페미니즘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친구들이 보여준 새로운 시각은 우물 안에 고여 있던 내 생각을 여러 갈래로 발전시켰다. 대화의 주제는 서로의 전공이나 꿈으로 확장되기도 했고, 그렇게 다른 전공의 친구를 만나 가치관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수업 연장의 달인이시다. 우리는 일대일 식사와 조모임을 통해 연장된 수업을 해왔다. <여성학의 이해>는 학교 교육에 회의적이던 나를 성장시킨 유일한 학교 수업이다. 대학생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지성인으로서의 공부를 처음 경험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버스에서 틈틈이 토론 자료집을 펼쳐서 읽었고, 자기 전에 토론에서 나왔던 얘기들을 떠올리며 혼자 그에 대한 반박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 <여성학의 이해>는 강의계획서에서 경고하듯이 아니, 그 이상으로 수업의 주체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다른 강의에서는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과제들이 쏟아지는데도 큰 불평 없이 모두 성실하게 참여했던 이유는 다른 학우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변화를 실감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께서 많은 성장의 여지를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 외에도 단체 연락망으로 글쓰기 도움터나 여성학 강연을 소개해주셨다. 가끔은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던져주시기도 했다. 수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에는 ‘학생들이 해야 할 게 늘어난다고 싫어하진 않을까?’, ‘별 효과가 없는 건 아닐까?’ 등 많은 고민이 따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했던 모든 배움의 여지는 좋은 수업을 위해 선생님께서 항상 고민하신 결과물일 것이다. 사실 이 에세이도 선생님께 당신의 고민과 시도가 옳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천선영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하은(사회대 지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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