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 오랜만에 올라간 고향에서 친구와 친구의 대학 동기를 만났다. 친구의 대학 동기와는 초면이었지만 친구가 내 얘기를 몇 번 해둔 모양이었다. 첫 만남에 친구의 대학 동기는 내게 말했다. “아, 이분이 그 여기자시구나.”

나는 스물한 해를 살면서 단 한 번도 ‘여(女)’가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여고생’, ‘여교사’, ‘여의사’… 단지 여(女)의 뒤에 붙는 말을 더 자세히 표현하기 위해 붙이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번도 나 스스로를 여(女)기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이고 기자이니 여기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남(男)기자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듯, 여기자라는 말도 내게는 굉장히 생소하게 들렸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학보사에서 일하는 나를 ‘조 기자’라고 불렀지, 단 한 번도 여기자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 뜨악한 경험이었다.

최근 들어 언론의 성 표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거론된다. 일간지의 기사를 읽다 보면 남성은 ‘A(40)씨’와 같이 표현되는데, 여성은 ‘B(40·여)씨’로 표기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강력범죄 보도에서도 유난히 여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최근에 본 기사의 헤드라인은 <장애女 상습 성추행 40대… 징역 2년 선고 받아>와 같이 적혀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장애를 가진 여성이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뜻일까? 가해자는 40대 남성이었고,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장애인 여성이었다. 의미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굳이 표제를 여(女)에 맞춰서 작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누군가 내게 “쟤 기자 하더니 프로불편러 다 됐다”고 했다. 사소한 것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문제일까? 고민해봤다. 내가 여(女)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포털사이트에 ‘여기자’를 검색해봤다. ‘여기자 외모’, ‘여기자 결혼’ 등의 키워드가 검색됐다. 이미지 검색엔 외모가 예쁜 기자들의 사진과 속옷 혹은 가슴 등이 노출된 해외 여성 기자들의 사진이 떴다. 그래서 이번엔 ‘남기자’를 검색했다. ‘남깁시다’의 의미를 띤 글들이 검색됐다. 남성 기자의 사진은 거의 뜨지 않았고 ‘인생 사진을 남기자’, ‘추억을 남기자’ 등과 관련된 사진이 떴다. 검색 결과를 모두 보고 나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여(女)의 의미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검색해본 여기자의 여(女)는 말 그대로 ‘섹스어필’이었다.

얼마 전, 기사를 쓰다가 그냥 ‘학생’으로 표현해도 될 것을 굳이 ‘여학생’으로 표현해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여(女)를 사용해왔던 것이었다. 기사를 쓸 때마다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성이어서 기자가 된 것이 아니듯, 취재원의 목소리를 듣는 데 있어 성별은 중요치 않으니까.

조현영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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