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3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고 선언했다. 헌재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쿠데타와 같은 법 밖의 비정상적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탄핵이라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물러나게 했다는 점에서, 이번 헌재 결정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실로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

되짚어 보면, 지난 해 10월 24일부터 언론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본격적으로 쏟아졌고, 10월 29일에 시작된 촛불 집회가 이후 133일 동안 19차례나 이어졌다. 연인원 1,5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법과 정의를 소리 높여 외쳤지만 참으로 차분하고 자제된 평화집회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난 오랜 역사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가장 강력한 의사표현의 방식이었으며, 그래서 전 세계의 특별한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촛불 민심을 반영한 국회가 12월 9일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고, 이후 헌재가 16차에 걸친 변론을 진행했다. 헌재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로 결정이 선고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법적 쟁점과 사실은 비교적 명료했다. 그런데도 연일 보도되는 혼란스러운 주장들에 접하며 국민들은 심각한 법적 다툼이 있는 듯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그 실상은 법 위에 군림하려는 낡은 기도가 국민적 ‘학습’의 공간을 연 것이었다. 

대통령 대리인단이라는 자들이 끊임없이 우격다짐의 주장들을 내놓았고, 심지어 헌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법정모독’조차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자신이 헌재의 사실규명 요청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은 채 ‘장외투쟁’으로 일관했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겠다고 공언하고서도 합당하지 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거부했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억지논리로 막아섰다. 박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부인과 말 바꾸기와 상황 왜곡은 ‘대통령’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옹색한 행태였다. 헌재가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탄핵 인용의 주요한 이유로 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헌재 결정은 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검찰이 눈치를 보고 국회가 주저할 때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이건 아니다’라고 분명한 목소리를 낸 결과이다. 광장에 모인 국민들은 다양한 주장들을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며 소화해냈고, 바로 그 때문에 더 많은 국민들이 광장을 채웠다. 치밀한 ‘팩트 체크’에 주력한 언론과 보다 넓은 광장을 제공한 인터넷이 광장 민주주의를 뒷받침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헌재 결정은 법률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파면할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헌재 결정은 그 ‘법률가의 상식’을 확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법률가’들의 실로 다양한 행태에 접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법률가’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법과 원칙’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는 자들이 대한민국에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법률가 개혁’이 무엇보다 긴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야말로 이번 헌재 결정 과정의 가장 큰 성과이다. 

헌재 결정은 헌법이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오랜 기간 동안 헌법은 ‘헌 법’이라는 야유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헌법을 따라가다 보니 자격이 없는 대통령은 파면해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살아있는 법’이라는 증명이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오랜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켜보고 고민하며 차곡차곡 쌓아 온 역사의 결과이다. 그래서 헌재 결정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헌법과 법치주의가 더욱 더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사건인 것이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 2017년 3월 10일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근거를 대지 않는 ‘묻지마 권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아전인수식 궤변’,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악마로 저주하는 것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공허한 아이덴티티’, 세상의 변화에 눈 감은 ‘맹목의 무지와 무능’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이 장대한 역사의 한 걸음을 깊이 새기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을 때이다.

김창록 교수

(법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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