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퀴퀴한 먼지가 날리는 어느 건물 안. 유리창은 전부 빠지고 불은 하나도 없다. 걷는 걸음마다 바닥에 쌓여있던 먼지가 코를 찌른다. 내벽의 페인트도 점점 벗겨져가는 이 공간 안에서 느닷없이 두 명의 댄서가 나타난다. 이들은 빠르지 않은 음악 템포에 맞춰 난간을 향해 달려나가기도 하고, 땅바닥에 몸을 비비기도 한다. 이는 ‘영상서랍’이 진행한 얼라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영상서랍은 도심 속 오래된 근대 건축물들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보관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영상서랍 이영민(인문대 국어국문 03), 박지혜(인문대 철학 06) 대표를 대구영상콘텐츠랩 2층에서 만났다●

영상서랍의 시작

영상서랍 사무실이 둥지를 튼 대구영상콘텐츠랩에서 영상서랍 대표 박지혜 씨를 만났다. 환하게 웃고 있는 박 대표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박 대표는 영상서랍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영상서랍은 누구나 꺼내볼 수 있다는 ‘서랍’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따왔다”며 “대구에 있는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담아 쉽게 꺼내볼 수 있게 하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조직구성은 딱 두 명으로 돼있다”며 “마음 맞는 사람들과 기획을 같이 하기도 하지만 워낙 허물없이 지내 조직이란 개념이 희미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 대표와 대학시절 동아리로 인연을 맺었다. 두 대표는 한국영상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함께 참가 후 대구로 돌아와서 일본의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삼덕상회를 발견했다. 박 대표는 “당시 주변에 카페가 하나도 없었는데 옛 건축물을 복원하면서 삼덕상회라는 카페가 생겼다”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상서랍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어찌할 줄 몰라 무작정 (사) 시간과공간연구소에 전화를 했다. 박 대표는 “알고보니 당시 시간과공간연구소 사무실이 우리 사무실에서 100m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며 “가서 어떻게 하는지도 물어보고, (사) 시간과공간연구소의 지인과 호형호제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육성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 장비를 사고 제대로 영상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 대표는 모두 영상과 색다른 풍경을 좋아했다. 본교 철학과 재학 중 영화에 관심을 보인 박 대표는 “막연하게 영화 잡지에 나오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졸업할 즈음 찾아간 본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님께 “영화는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애들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박 대표는 “교수님 이야기를 들으니 좀 정리가 되는 듯 했다”며 “그래도 영상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이 대표는 영상서랍을 시작하기 전의 자신을 ‘놀았다’고 표현했다. “졸업 후 도서관에도 있었고 근로복지공단에서 대구노동실태를 조사하기도 했다”며 “그때 북성로 여인숙 골목을 보고 평소와는 다른 북성로의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오래된 건물을 기록하는 이유

영상서랍이라는 ‘서랍’ 속에 두 대표가 주로 담고자 하는 것들은 근대 건축물이다. 이들의 활동 이력을 보면 그렇다. 2016년에 진행한 프로젝트 ‘히든 플레이스’에서는 도심 속에 있는 건물을 직접 찾아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찾은 건물들은 인문주간 행사에 소개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히든 플레이스는 호기심의 영역이었다”며 “우리는 재밌어야 활동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2014년에는 중구청이 진행하는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재건축) 사업(이하 리노베이션)’에서 재건축 전과 후를 기록하는 영상 기록팀으로 참여했다. 리노베이션에서는 북성로 공구박물관, 이육사 문학관 등의 모습을 기록해왔다. 대상 건물 영상에 ‘얼라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춤을 결합해 공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공간은 무생물이고 그 분위기를 누군가가 설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구청의 프로젝트에 포함돼 수동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중구청에서 요구한 건 재건축 전과 후의 영상뿐이었다”며 “다른 모든 프로젝트는 영상서랍이 능동적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도 영상서랍은 북성로를 중심으로 도심 속에 숨어있는 근대 건축물들을 발견하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영상서랍이 근대(혹은 오래된) 건축물을 기록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오래된 건물들은 주인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막상 들어가서 보면 10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옛날 신문이나 상평통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00년 된 건물은 그 건물만의 이야기가 있지만 사라지는 데 5시간도 안 걸린다”며 “그런 장면들을 볼 때 너무 처절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세대 간의 소통이다. 영상서랍은 얼라이브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SNS에 업로드 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대학 다닐 때 시내는 다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건물이 있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며 “평소에 보던 골목과 달리 낯선 장면을 보니 이전의 역사와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록을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기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영상을 묵혀둔 채 사람들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상과 사진, 그들이 전달하는 방법

영상서랍이 가장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오버랩스’다. 이 프로젝트는 영상서랍의 이름과는 다르게 사진을 가지고 작업했다. 두 대표는 대구의 옛 건축물 사진을 (사) 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 제공받아 반투명한 OHP 필름에 인쇄한 뒤, 필름을 카메라 렌즈에 붙인 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은 절반씩 놓아 두 시대의 장면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박 대표는 “사진을 찍었다는 자체보다 그 장소를 똑같이 찾았다는 것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상과 사진의 차이에 대해 “사진은 함축적으로 한 순간을 표현하는 건 좋다”며 “그러나 영상은 슬로우모션이나 타임랩스 등과 같이 시간성을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사진은 한 순간에 집중력이 생기지만 영상은 집중력은 좀 떨어질 수 있다”며 “이러한 성격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영상은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처음 영상서랍을 시작할 때는 ‘우리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영상을 우리가 원하는 걸 표현할 수 있는 도구처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누구?

영상서랍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팀이다. 영상서랍이 어떤 곳인지를 물었을 때 박 대표는 맨 처음 “회사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우리는 프로젝트 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 시간과공간연구소에 있는 사람들과 합작을 하기도 하지만 (사) 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 지원을 받진 않는다.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서 지원을 받긴 했지만 사회적기업은 아니다.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 신청할 생각은 없다”며 “기업이 되면 직원들을 책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 아직 사회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금은 공모전에 참가하거나 의뢰가 들어오는 영상을 제작하고 댓가를 받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자 박 대표는 “아직 얼라이브 프로젝트, 오버랩스 등 마무리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마치면서 각오를 물어보자 둘은 동시에 “싸우지 말기?”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광희 기자/lkh16@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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